‘이씨 조선’ ‘이 왕가’라는 호칭 유감 - 황옥주 수필가
2023년 10월 20일(금) 00:00
이성계가 나라를 세운 후 중국 명나라 황제에게 회령과 조선 중 하나를 골라 국호로 정해 달라 청했던 일은 사서에 나와 있다. “조선은 옛날부터 동이의 명칭으로 유래가 깊으며 아름답기 때문에 조선이 좋겠다”하여 ‘조선’이 국호가 됐다. 내 나라 이름도 남에게 물어서 정했던 부끄러운 역사다.

이도 떳떳치 못한데 기왕 조선이라 정해진 국호를 두고 ‘이씨 조선’, ‘이 왕조’라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도자기만 하더라도 고려시대 자기는 고려자기, 고려청자라 하면서 조선시대 자기는 이조자기나 이조백자라 한다.

더 납득이 안 가는 것은 이씨 조선이란 말이 한국 최고의 사학자가 저술한 책에도 버젓이 나와 있다는 점이다. 이병도의 ‘한국사대관’이다. 국사가 모든 국가시험의 필수과목이던 시절 이 책은 시험 대비자의 필독서처럼 중요시 됐었다. 그 부록(565쪽)에 역대 왕실계보를 정리했는데 여덟 번째 나온 조선 왕조는 ‘이씨 조선 세계’로 기술해 놓았다. 그 이유가 지금도 궁금하다.

1986년 일본에 파견되었을 때 교육 원서가에 교민 이태평 씨가 편찬한 ‘이왕조 6백년사’가 꽂혀있었다. 총 50장으로 나눠 일어로 썼는데 제1장은 아예 ‘이 왕조의 탄생’이라는 소제목까지 붙였다. 그 서문에 “일본에서 태어난 2세 3세들이 일본 교육을 받고 일본어가 일상어이기 때문에 일본어로 썼다”고 했다. 이해가 간다. 조센징이라는 멸시 속에 부모님들도 쓰지 않은 한글을 자녀들이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과문한 탓인지 나라를 세운 사람의 성을 국명으로 삼은 나라는 없는 줄 안다. 고씨 고구려, 온씨 백제는 물론 왕건이 세웠다고 왕씨 고려나 왕 왕조라 하지 않는다. 이는 중국도 마찬가지다.

귀국 후 황백현 씨의 안내서를 들고 맨 처음 쓰시마에 들렀을 때 큰 충격에 휩싸인 적이 있다. 고종의 딸 덕혜옹주와 소 다케유키의 결혼 봉축 기념비 앞에서다. 남편이 대마도번 양자였기에 옹주의 첫 시댁 방문 기념으로 은광 노무자, 숯을 굽거나 군사시설 노동자로 강제 차출된 망국 후손들이 한 푼 두 푼 추렴으로 세웠다며 이름과 액수가 적혀있다. 일본은 한 푼 지원도 안 했으면서 그들의 관여와 간섭 속에 이뤄졌을 것은 뻔하다. 비석머리에 고종의 딸은 이 왕가로, 남편은 소가(宗家) 백작으로 새겨놓았다. 하찮은 일본 백작이 조선왕실과 격이 같다는 의미다.

이 나라가 주권을 잃었을 때는 그랬다 치자. 광복 후 국가적 항의는 없었는지 국사편찬위원회에 물어봤다. 몇 차례 시도는 있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단다. 일본은 경술국치 후 조선왕실을 자기들 왕공족과 같은 일개 가문으로 격하하여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한 것은 사실이란다.

국가 호칭에 대해 국립국어원의 뜻도 알아봤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이씨 조선’은 “조선을 낮추어 이르는 말”로 올라있으며 ‘이 왕가’는 대한제국 고종과 순종의 가족을 이르는 말이란다.

일본왕실은 성씨가 없다. 천신인 아마테라스 오미가미(天照大神)가 세웠다고 교육 현장에서 가르치고 있다. 교실 정면에 일왕의 사진을 걸어 놓고 “신의 자손이신 천왕 폐하, 우리 국민은 천황 폐하를 신으로 모십니다”하며 아침마다 경배로 국민을 세뇌시켰다. 왕을 받드는 나라는 많아도 오늘날 왕을 신으로 모신 나라는 일본밖에 없다.

그런 천왕에게 인간만 쓰는 고유의 성을 붙인다는 것은 상상 못할 불경이다. 반면 조선은 사람이 세운 나라이므로 성씨를 붙여야한다는 발상 중의 하나가 이씨 조선이요 이 왕가다. 심지어 오카쿠라 덴신(岡倉天心) 같은 사람은 이 나라 시조신인 단군을 아마테라스 동생의 아들이라는 망언까지 서슴지 않는다.

몇 개월 전에도 일본은 고종 아들이자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을 강제로 끌고 가 살게 했던 저택을 ‘구 이 왕가 도쿄 저택’이라며 도쿄도(都) 유형문화재로 지정했다는 기사를 봤다. 그래도 누구 하나 이 나라 마지막 왕조는 조선이지 이씨 조선이나 이 왕가가 아니라고 항의한 사람이 없다.

나라 망한 치욕은 한 번이면 족하다. 후회는 언제나 늦다. 양보하면 저들도 달라지리라 보는 것은 허허로운 꿈이다. 우리를 위해 어깨를 겯고 갈 일본이 아니다. ‘고기가 예뻐 먹잇감을 주는 낚시꾼은 없다’는 말은 만고의 진리다. 태양은 찬란히 빛나도 터널 속에 갇힌 듯 앞이 캄캄한 미망의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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