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 정신 - 임동욱 선임기자 겸 이사
2023년 08월 29일(화) 00:00 가가
1990년대 초반, 미군 해병대 내의 가혹행위로 인한 병사의 죽음을 둘러싼 법정 공방을 다룬 ‘어 퓨 굿 맨(A FEW GOOD MEN)’이란 영화가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톰 크루즈와 데미 무어가 진실을 밝히려는 군 변호사로, 괴팍한 성격파 배우로 유명한 잭 니콜슨이 이를 은폐하려는 부대장으로 출연해 불꽃 튀는 열연을 펼쳤기 때문이다. 여기에 폐쇄적 군대 내에서의 법정 공방을 둘러싼 탄탄한 대본이 어우러지면서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다.
영화의 메시지도 묵직했다. 부대에 적응하지 못한 병사에 대해 부대장이 선임병들에게 얼차려(코드 레드)를 줄 것을 명령,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비교적 단순한 내용을 담았지만 내부 고발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당시 사회 전반에 깊은 울림을 줬다. 특히 군인의 의무는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것이지만 상관의 위법한 명령에는 복종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공감과 함께 진실과 정의에 기반한 군인 정신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국방부가 채수근 상병 사망 사건과 관련, 해병대 제1사단장 등 상부 지휘관들을 과실치사 혐의에서 빼고 대대장 두 명만 최근 경찰에 이첩했다. ‘채 상병의 죽음에 억울함이 남지 않도록 하겠다’며 사단장을 포함, 8명을 과실치사 혐의로 적시해 경찰에 이첩했던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은 오히려 항명 혐의로 군 검찰 조사를 받는 처지가 됐다. 이 과정에서 국방부 장·차관, 법무관리관, 대통령실 안보실이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채 상병 사망 사건은 단순하다. 사병의 안전을 무시한 지휘관들의 안이한 인식에서 기인한 명백한 인재다. 그럼에도 사건 축소에 연연하는 듯한 국방부의 모습은 자식을 군대에 보내야 하는 모든 부모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군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진 상황이다. 진실을 감당할 수 없는 군은 장병들에게 충성을 요구할 수 없다. 이는 군인 정신의 실종으로 이어져 국가의 근본을 뒤흔든다는 점에서 채 상병을 죽음으로 내몬 어두운 진실은 기필코 밝혀져야 한다.
/tu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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