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의 위로 - 김미은 여론매체부장
2023년 08월 24일(목) 00:00
‘사제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저는 그렇게 살지 못해 지금도 반성하며 살고 있습니다.’

광주시 동구 금남로 5·18민주화운동기록관 6층 ‘윤공희 대주교실’ 액자에 담긴 글귀를 한참 동안 들여다봤다. 민주화운동기록관은 광주와 광주 사람들을 오랫동안 지켜본 광주가톨릭센터를 리모델링해 지난 2015년 개관했다. 윤공희 대주교실은 1980년 당시의 집무실을 그대로 복원한 공간이다. 집무실과 침실, 책상, 당시 입었던 사제복 등이 놓인 단출한 공간에 들어서면, 그의 고백이 깊게 다가온다.

한 장의 사진이 눈에 띈다. 1984년 5월 4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금남로 가톨릭센터 앞 카퍼레이드 모습이다. 당시 한국을 처음 찾은 교황은 5·18의 현장인 광주 방문을 강력히 희망했고, 전남도청과 금남로를 거쳐 무등경기장에서 미사를 집전했다. 교황은 광주의 상처와 희생자들의 고통을 기억할 것을 천명하고 전 세계에 진실과 화해의 메시지를 전했다.

지난 2014년 한국을 찾았던 프란체스코 교황도 마찬가지였다. 교황은 세월호 유족들을 위로하고 위안부 할머니, 쌍용차 해고 노동자, 용산참사 희생자, 꽃동네 장애인들의 손을 잡았다. 그는 “고통 앞에 중립을 지킬 수 없다”며 몇몇 사람들의 제안을 뿌리치고 방한 내내 노란 배지를 달았다.

신앙을 성찰하고 사회 문제를 토의하는 전 세계 가톨릭 젊은이들의 대축제 ‘세계 청년대회’가 2027년 8월 서울에서 열리게 되면서 네 번째 교황 방한이 성사될 예정이다. 해외 참가자 20만∼30만 명을 포함해 약 70만∼100만 명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되는 세계 청년대회는 전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인 한국에서 교황과 지구촌 청년들이 평화를 기원하는 뜻깊은 자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평소 남북 분단 해소에 관심이 많았던 교황의 방북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금까지 교황의 방한은 종교의 유무를 떠나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다.

교황의 방문은 차별과 폭력이 만연하고 점점 극단으로 치닫는 우리 사회에 삶의 길을 제시하고 위로를 전하는, 어둠을 비추는 등불이 될 것이다.

/mekim@kwangju.co.kr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