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후에 오는 것들 - 명혜영 광주시민인문학 대표·문학박사
2023년 08월 10일(목) 22:00 가가
죽음은 끝이 아니다. 적어도 남겨진 자들은 의식을 치르면서 그제야 죽은 자에 대해 집중하고 회상과 회고를 거듭해 강렬한 기억으로 남긴다.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 후 남겨진 우리들은 ‘규명’과 ‘책임’이라는, 사자로부터 던져진 숙제를 풀지 못한 채 사건의 주변만을 맴돌고 있다. 안타깝게도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소명을 다하지 못하고 있어 부끄럽다.
죽음의 형태 중에서 자살은, 하나의 또 다른 삶의 형태가 된 지 오래다. 얼마 전 자살로 생을 마감한 한 초등학교 선생님을 떠올려 본다. 그녀는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 불가능한 상황을 남겨진 자들에게 ‘처벌’과 ‘개선’이라는 숙제로 남기고 떠났다.
일본작가 미야모토 테루는 ‘환상의 빛’과 ‘등대’에서 ‘죽음 후에 오는 것들’에 대해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어 이야기한다. ‘환상의 빛’에서는 한창 일할 나이에 자살한 남편에 대해 회고하는 아내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남편의 자살을 이해할 수 없던 아내는 자책하면서도 삶의 흔적을 통해 남편과 조우한다. 남편은 죽은 후 비로소 아내의 마음속에 살게 된 것이다.
또한 최신작 ‘등대’에서는 30년을 함께한 아내가 돌연 과로사하자 상실감에 빠진 중년 남성을 내세운다. 독서가 유일한 취미인 그가 ‘신의 역사’의 갈피에서 생전에 아내가 넣어둔 의문의 엽서와 조우하게 된다. 남겨진 남편에 대한 아내의 숙제인 셈이다. 이를 계기로 한 인간으로서의 아내를 찾아 나선다.
그렇다면 아내는 왜 ‘신의 역사’라는 책 속에 엽서를 끼워두었을까? 기실 엽서에는 소녀 시절 그녀가 행했던 작은 선행의 역사가 숨겨져 있다. 그리고 그 선행의 대상이 엽서의 발신인이다. 요약하자면 이웃집 어린 소년의 도둑질을 목격한 아내가 그의 앞날을 걱정해 대신해서 도둑 누명을 쓴다. 그런 후 어느 날 그녀는 소년을 불러내어 시리야사키 등대로 안내한다. 그곳에서 도벽에 대해 훈육하고, 모든 이들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등대의 교훈을 되새기게 한다. 따라서 아내에게 등대는 마치 신과도 같은 자비로움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 후 소년은 몇 번의 난관을 맞이하지만 결국 도벽을 극복해 낸다. 이에 감사의 엽서를 보내지만, 아내는 ‘나는 너를 모른다. 그러니 나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태도로 소년의 마음의 빚을 없애 준다. 즉 남편의 애독서인 ‘신의 역사’의 신은 서구의 신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아내에게 신은 현실 세계에서 도움을 주는 ‘등대’였던 셈이다.
다음은 남편이 아내의 가치관에 깊은 공감을 느끼는 장면이다. “남편은 어쩐지 아쉬워 선뜻 떠날 수 없었다. 조금 더 그곳에서 백아(白牙)의 시리야사키 등대를 바라보고 싶었다. 안개 속에 서 있는 자못 우아한 자태가 한 인간의 기나긴 과거에서 온 이야기를 뿜어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자리에서 침묵한 채, 바다를 나아가는 사람들의 생사를 지켜봐 온 등대가 어떤 일에도 동요하지 않는 한 인간으로 보였다. 하늘색과 바다색과 안개 속에서 등대는 스스로의 빛깔을 지우고 숨죽인 듯 보이지만, 해가 지면 어김없이 불을 밝혀 항로를 비춘다. 숱한 고생을 견디며 살아가는 이름 없는 인간의 모습이 저렇지 않을까. 저마다 다채로운 감정이 있고, 용기가 있고, 묵묵히 견디는 나날이 있고, 쌓여가는 소소한 행복이 있고, 자애가 있고, 투혼이 있다.” 즉 등대는, 모든 인간의 상징이다. 뒤늦게나마 아내의 숭고한 인간애를 접한 남편은 “아내를 향해 허리를 숙여” 존경을 표한다.
죽음 후에 남겨진 것, 즉 ‘한 인간에 대해 제대로 알아 달라는’ 숙제를 남편은 훌륭하게 해내었다.
삶과 죽음은 양극단이 아니라 했던 어느 작가의 통찰적 관점이 새삼 떠오르는 요즘이다. ‘나’를 세상이라는 곳으로부터 지우는 죽음은 가장 강력한 형태의 삶이다. 그로 인해 남겨진 자들이 맛보게 되는 상실감이 실로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요하는 삶의 연소이듯.
이제는, 우리 사회의 여러 ‘죽음’에 대해 살아 있는 자들이 성실히 답변해야 할 시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 후 남겨진 우리들은 ‘규명’과 ‘책임’이라는, 사자로부터 던져진 숙제를 풀지 못한 채 사건의 주변만을 맴돌고 있다. 안타깝게도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소명을 다하지 못하고 있어 부끄럽다.
일본작가 미야모토 테루는 ‘환상의 빛’과 ‘등대’에서 ‘죽음 후에 오는 것들’에 대해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어 이야기한다. ‘환상의 빛’에서는 한창 일할 나이에 자살한 남편에 대해 회고하는 아내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남편의 자살을 이해할 수 없던 아내는 자책하면서도 삶의 흔적을 통해 남편과 조우한다. 남편은 죽은 후 비로소 아내의 마음속에 살게 된 것이다.
그 후 소년은 몇 번의 난관을 맞이하지만 결국 도벽을 극복해 낸다. 이에 감사의 엽서를 보내지만, 아내는 ‘나는 너를 모른다. 그러니 나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태도로 소년의 마음의 빚을 없애 준다. 즉 남편의 애독서인 ‘신의 역사’의 신은 서구의 신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아내에게 신은 현실 세계에서 도움을 주는 ‘등대’였던 셈이다.
다음은 남편이 아내의 가치관에 깊은 공감을 느끼는 장면이다. “남편은 어쩐지 아쉬워 선뜻 떠날 수 없었다. 조금 더 그곳에서 백아(白牙)의 시리야사키 등대를 바라보고 싶었다. 안개 속에 서 있는 자못 우아한 자태가 한 인간의 기나긴 과거에서 온 이야기를 뿜어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자리에서 침묵한 채, 바다를 나아가는 사람들의 생사를 지켜봐 온 등대가 어떤 일에도 동요하지 않는 한 인간으로 보였다. 하늘색과 바다색과 안개 속에서 등대는 스스로의 빛깔을 지우고 숨죽인 듯 보이지만, 해가 지면 어김없이 불을 밝혀 항로를 비춘다. 숱한 고생을 견디며 살아가는 이름 없는 인간의 모습이 저렇지 않을까. 저마다 다채로운 감정이 있고, 용기가 있고, 묵묵히 견디는 나날이 있고, 쌓여가는 소소한 행복이 있고, 자애가 있고, 투혼이 있다.” 즉 등대는, 모든 인간의 상징이다. 뒤늦게나마 아내의 숭고한 인간애를 접한 남편은 “아내를 향해 허리를 숙여” 존경을 표한다.
죽음 후에 남겨진 것, 즉 ‘한 인간에 대해 제대로 알아 달라는’ 숙제를 남편은 훌륭하게 해내었다.
삶과 죽음은 양극단이 아니라 했던 어느 작가의 통찰적 관점이 새삼 떠오르는 요즘이다. ‘나’를 세상이라는 곳으로부터 지우는 죽음은 가장 강력한 형태의 삶이다. 그로 인해 남겨진 자들이 맛보게 되는 상실감이 실로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요하는 삶의 연소이듯.
이제는, 우리 사회의 여러 ‘죽음’에 대해 살아 있는 자들이 성실히 답변해야 할 시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