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세우는 모금
2023년 08월 10일(목) 00:15
“처음에 나치는 공산당원을 찾아왔다/ 그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당원이 아니었으므로(중략)// 어느 날 나치는 유대인을 끌고 갔다/ 그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그리고 나치는 가톨릭 신자들에게 다가왔다/ 그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었으므로// 마침내 나치가 나에게 왔을 때/ 나를 위해 나서 줄 사람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

일본 강제 동원 피해자들을 위한 모금 관련 취재로 강정채 전 전남대 총장을 만났을 때 건네 받은 시 한편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반나치 투쟁에 앞장섰던 마르틴 니묄러의 시는 인터넷상에서 ‘침묵의 대가’로도 알려져 있는데, 참으로 무겁게 다가오는 제목이다.

현재 양금덕(93) 할머니와 이춘식(103) 할아버지, 그리고 두 명의 유가족 등 모두 네 명의 피해자는 해괴한 정부의 ‘제3자 변제’ 해법을 수용하지 않고 여전히 싸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이사장 이국언)을 비롯해 전국 600여 개 시민단체가 함께 꾸린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의 모금 운동은 다수의 시민이 침묵을 깨고 역사를 바로 보기 시작한 작은 발걸음일지도 모른다.

지난 6월 29일 시작된 시민 모금액이 9일까지 4억 4138만 원을 기록했고 참여 인원은 6360명(단체)에 달했다. 익명으로 1000만 원을 기부한 서울 시민부터 5000원, 1만 원 쌈짓돈을 보낸 사람 등의 정성이 담긴 금액이다. 언론 보도를 보고 부끄러움에 뒤늦게나마 작은 정성을 보냈다는 이를 만났다. 계 모임, 공부 모임 등 다양한 그룹에서도 뜻을 모아 ‘함께’ 기부하고, 마치 ‘점조직’처럼 SNS를 통해 동참을 호소하는 이들도 많다. 총 목표액은 10억 원. 우선 오는 12일 서울에서 열리는 8·15 범국민대회에서 네 명의 피해자에게 1억 원씩 지급될 예정이다.

취재에서 만난 김선호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상임 고문은 “이번 모금 운동이 시민들이 국가에, 역사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피해자의 인권과 국가의 존엄을 세우는 일’. 이제 침묵을 깰 때다. 모금계좌는 농협 301-0331-2604-51 사단법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김미은 여론매체부장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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