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근 없는 아파트 - 송기동 예향부장
2023년 08월 08일(화) 00:30
“내가 누워 있는 이 방바닥에서부터 불과 사오 미터 남짓한 아래쪽 공간의 풍경은 어떤 것일까. 꼭 그만한 높이의 위쪽 공간은 또 어떤 모양일까,”

1978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이동하 작가의 단편소설 ‘홍소’(哄笑)에서 주인공 ‘나’는 한밤중 잠에서 깨 ‘지상 몇 미터의 높이에 나는 누워 있는가?’ 반문한다. 1970년대 후반, 5층짜리 13~14평 임대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 주거 문화와 세태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아파트 문화는 한국 주거 문화의 대세를 이루고 있다. 통계청 국가 통계 포털(KOSIS)에 올려진 ‘행정 구역별 주택 유형’(2021년 기준)에 따르면 전체 주택 가운데 아파트 비중은 전국 평균 51.5%로, 단독 주택 30.4%와 대조를 이룬다. 특히 세종시(75.0%)와 광주시(66.9%), 울산시(60.6%), 경기도(58.3%)가 압도적이다.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는 1990년 서울을 처음 방문했다가 거대한 아파트 단지에 충격을 받았다. 이후 ‘한국은 어떻게 아파트의 나라가 되었는가’에 대한 연구 결과를 담아 펴낸 ‘아파트 공화국’(2007년)에서 이렇게 지적한다.

“한국은 어떤 도시 형태와 사회 구조를 발전시키기를 원하는가? 그리고 그 기초 위에서 어떤 주택 정책과 주거 공간을 만들어가기를 바라는가?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정책 결정자들은 이러한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던 것 같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7일부터 무량판 구조(보 없이 기둥이 직접 슬래브를 지지하는 구조)로 시공된 민간 아파트에 대해 전수 조사에 들어갔다.

1970년 4월 서울 와우아파트부터 지난해 1월 광주 화정아이파크에 이르기까지 50년 이상 아파트 붕괴 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다. 공기(工期) 단축과 원가 절감을 이유로, 콘크리트 구조물의 뼈대 역할을 하는 철근을 빼먹는 공사 관행이라니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지난 4월 발생한 인천시 검단신도시 아파트 지하 주차장 붕괴 사고로 촉발된 ‘철근 누락 아파트’ 사태를 통해 설계·시공·감리 과정에 만연한 부실 문화를 뿌리 뽑아야 할 것이다. 또한 획일화된 아파트 문화를 탈피하는 새로운 주거 문화 양식도 고민해야 한다.

/송기동 예향부장s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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