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향기] 멜론 두 개 - 박용수 수필가·동신여고 교사
2023년 08월 07일(월) 00:00
무덥다. 석곡동 당산나무 정자다. 먼저 자리 잡은 두 어르신이 나그네를 반긴다. 고추를 따다 잠시 피신하신 참이란다. 태양은 고추보다 시붉다. 한낮은 쉬라는 이장님의 당부 목소리가 마을 방송을 타고 말매미 소리에 섞여 고샅으로 울려 퍼진다.

자전거 운동도 좋지만 무더위 생각하라는 어르신 말씀이 시원시원하다. 나그네에게도 살갑고 우렁우렁 임의롭다. “사람이야 입고 벗고 하지만 이 땡볕에 짐승이나 식물들은 무슨 죄냐” 하시며 기후 걱정이 크다.

얼마 후, 정자 앞에 승용차가 멎는다. 낯선 청년이 정자로 다가온다. 어르신은 이번에도 표정이 흐뭇하다. 수줍게 다가온 청년이 무언가를 얼른 놓고 되돌아간다. 빵 세 개, 우유 세 개가 웃고 있다.

어젯밤 어머니 전화를 받았다. 내 친구가 멜론 두 개를 주고 가더란다. 종종 있는 일이지만 항상 누군지 궁금해진다.

시골집은 학교 앞 길가다. 학창시절 많은 친구들이 우리 집에서 밥도 먹고, 자고 가곤 했다. 어쩜 그 친구도 하룻밤쯤 우리 집에서 밥을 먹었거나 기숙을 한 녀석일 거다.

취업하고 객지 생활하고 아이 기르고 먹고살기 바쁘게 산 반세기, 친구도 고향집에 들렀다가 대문 앞에 어머니를 보고 차를 멈췄으리라.

응당 친구는 자기소개를 했겠지만 구순을 바라보는 어머니가 어이 한두 번에 알아들었을 리 만무하다. 그는 그냥 친구라고 하고 길을 재촉했을 게고, 출발하는 차로 옥수수나 호박 몇 개를 들고 달려가는 어머니 모습이 선하다.

젊었을 적 어머니가 차려준 밥 한 그릇을 잊지 못하거나, 이미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나서 친어머니 대하는 마음으로 지나치지 못하는 친구들 마음이 한없이 고맙다. 하지만 간혹, 어머니 전화를 받는 날이면 어머니와 나는 그 차가 무엇이고 얼굴은 어떻게 생겼고 등등 나름 추적을 하지만, 좀체 감을 잡을 수 없어 어머니는 물론 나도 안타까워진다. 고마움을 표현할 수 없으니 말이다.

작년 겨울 늦은 귀갓길이었다. 사위는 어둡고 눈이 내려서 사람이 거의 없는 길목이었다. 폐지를 끄는 할머니 손을 꼭 붙들고 무엇을 건네는 어르신이 보였다. 노인이 처음에는 뿌리치다가 무슨 말인가를 더 듣고 나서야 곱게 받아 들고 어르신에게 고개를 끄덕끄덕 숙였다.

다가가서 사연을 애써 물었다. 힘들게 일한다고 동냥하듯 뜻을 전하면 안 된단다. 날씨도 춥고 폐지 가격도 헐값이다. 각자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자기 힘으로 당당히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서 항상 조심조심 “어머니” 하며 살펴 건네신단다. 그러면 당신 어머니에게나 잘하라고 역성을 내는 분도 계신단다. “제 어머니가 살아계시면 당연히 어머니께도 드리지요. 어머니가 제 어머니입니다.” 거듭 따듯한 국밥 한 그릇 말아 드리시라고 겸손하게 뜻을 보이면 그때 진심으로 받아주신단다.

선행은 베푸는 마음 못지않게 받는 사람 마음을 살피는 게 중하다고 김필식 동신대 이사장님은 늘 말씀하신다.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의미를 잘은 모른다. 어쩜 이를 두고 이를 것이다. 정기적으로 기부를 하거나 재해 때마다 거금을 내놓는 독지가 마음도 아름답고 좋다. 선행은 자체만으로 빛나지만 구석구석에서 보이지 않게 마음을 나누는 이런 모습이 난 더 훈훈하다.

물건을 주고받는 것은 거래다. 물건을 주고받을 때는 영수증이 필요하지만, 마음을 나눌 때 영수증은 사랑과 배려, 그 따뜻한 마음이다.

멜론 두 개, 그 다디단 마음을 도대체 누가 놓고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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