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 박성천 문화부장·편집국 부국장
2023년 08월 07일(월) 00:00
벨기에 브뤼셀에는 지역의 명물인 ‘오줌싸개 소년’ 동상이 있다. 동상이 내뿜는 것은 물줄기가 아니라 지역의 특산품인 램빅이라는 맥주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12세기 중세 무렵 지금의 벨기에 인근은 복잡한 정치 지형에 놓여 있었다. 특히 중부에는 브라반트 공국이 자리했는데 행정 중심 도시는 브뤼셀이었다. 당시 주변의 상업 도시들은 세금 문제로 인해 곧잘 공국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다. 1114년에 태어난 왕위 계승자인 고드프리 3세는 부친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출생 이듬해에 왕위를 물려받게 된다.

당시는 반란군이 진입해 들어올 만큼 절체절명의 시기였다. 전장의 지휘관들은 군사들의 사기를 위해 어린 고드프리를 전장에 보내줄 것을 고드프리의 어머니에게 요청한다. 왕위 계승자는 전장의 사령관이나 다름없었기에 어린 왕이 유모와 함께 전투에 참전해야 하는 불가피한 상황에 놓였다. 이와 맞물려 흥미로운 것은 당시는 맥주를 마시면 젖의 양이 늘어난다는 속설이 퍼져 있었다. 램빅 맥주를 마신 유모는 고드프리에게 젖을 물렸고, 결국 고드프리 군대가 대승을 거두게 된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이맘때면 시원한 맥주를 찾는 이들이 많다. 흥미로운 것은 맥주를 모티브로 하는 지역 축제가 곳곳에서 열린다는 점이다. 광주 동구는 충장45 마을협동조합 주최로 지난 28~29일 ‘충장길맥’ 축제를, 광주 서구는 양동건어물시장 일대에서 29일 ‘양동 건맥 축제’를 열었다. 이번 주에는 서구 치평동 김대중컨벤션 센터 일대에서 ‘비어페스트 광주’가 예정돼 있다.

장마 이후 우후죽순 맥주 축제가 열리고 있지만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지역 특색을 살린 콘텐츠를 내세우기보다 포맷 등이 천편일률적이라는 지적이다. 흥행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유인책으로 써야 할 맥주를 과도하게 중심에 둔 나머지 콘텐츠 알맹이가 없다는 얘기다.

앞서 언급한 오줌싸개 동상은 지역의 고유한 스토리를 지닌 콘텐츠다. 세계인들은 램빅 맥주 하면 오줌싸개 동상이 있는 브뤼셀을 떠올린다. 지역의 맥주 축제가 ‘거품 빠진’ 맥주의 이미지로 굳어질까 우려스럽다.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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