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공사의 배후 - 윤현석 정치부 부국장
2023년 08월 03일(목) 00:00 가가
구약성서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바벨탑은 인간의 헛된 욕망을 담고 있다. 하나의 언어를 썼던 인간은 하늘에 닿게 탑을 쌓아 이름을 알리고 모여 살아가는 구심점으로 삼고자 했다. 하지만 야훼는 그 오만함에 분노해 인간들이 서로 다른 언어를 쓰게 한 뒤 사방으로 흩어지게 했고, 그로 인해 공사는 중단됐다. 바벨이라는 이름은 ‘뒤섞다’는 의미다. 이 성경의 바벨탑은 실제로 존재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2대 왕인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정복 군주였는데, 주변 국가를 공격해 영토를 넓히며 강력한 권력을 행사했다. 그는 자신의 권위를 상징하는 바벨탑의 원형 에테멘앙키, 이슈타르의 문, 바빌론의 공중 정원, 신바빌로니아의 판테온 등 다양한 건조물을 완성시켰다. 후대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벨탑의 규모는 가로·세로 30㎝, 높이 8㎝의 벽돌로 쌓은 91.2m의 높이였다. 이 탑은 페르시아의 침략으로 무너졌는데, 매우 단단했던 벽돌들은 원형 경기장, 댐, 교각 등의 재료로 쓰일 정도였다.
최근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연이어 붕괴 사고가 발생했다. 조사 과정에서 공기업인 LH 공사 현장에서 철근 누락이 곳곳에서 벌어진 사실이 밝혀졌다. 붕괴를 피한 아파트들도 값은 수억, 수십 억씩 하는데, 입주자들은 이사하자마자 말도 안 되는 하자에 시달려야 한다. 불법 재하청, 재재하청 등 고질적인 비리, 엉터리 관리·감독 등 업계의 구태와 정부·지자체의 한심한 행정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공기업이 저 정도면 민간 건설업체들은 도대체 어느 정도일까.
광주의 이 고층 탑들은 도시 경관, 정체성에 해를 끼치고 안전함이나 쾌적함도 갖추지 못했으며, 50년도 못 버티며 다시 쓸 수도 없는 대규모 폐기물로 전락할 것이다. 부동산 경기 부양을 이유로 온갖 특혜를 몰아줬던 건설업계의 병폐가 어제 오늘의 일인가. 정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결과가 지금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후분양제 도입, 건설 원가 공개, 아파트 공사 현장에 대한 실시간 검사 실시, 입주자 참여 준공 검사 등 혁신적인 대책이 없다면 이번 정부 역시 과거 정부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chadol@kwangju.co.kr
/chadol@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