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을 지키는 인간의 한 방식- 강문혜 소설가
2023년 08월 01일(화) 00:00
20대 초반의 2년차 여교사(서울 서이초등학교)가 자신의 학교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초등학생이 교사를 때려서 전치 3주 상해를 입힌 폭행 사건 뉴스를 접한 지 불과 며칠 만이다. 교사들에게 이제 교육 현장은 위태로운 지뢰밭 같은 곳이다. 가장 두려운 건 학부모들의 악성 민원이다. 그 역시 학부모 민원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그는 과도한 업무들로도 고통받고 있었다. 저경력 교사가 기피 업무를 2개씩이나 떠맡고 있었던 것이다.

NEIS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으로 어렵고 귀찮고 시간도 많이 잡아먹는 일이다. 규모가 큰 학교에서 시스템 교체까지 이루어지고 있었던 나이스의 업무량은 폭주했을 거고, 이런저런 컴플레인에 시달리면서 그는 진이 다 빠졌을 것이다. 담임 업무 또한 기피 대상이다. 학교폭력 가해자 부모들이 자녀의 잘못을 인정 않고 되레 악의적인 민원으로 민형사상 고소 고발로까지 이어지는 일이 다반사라 교사들은 질색을 한다. 그런데 그는 그중에서도 가장 힘들고 꺼리는 1학년 담임이기까지 했다. 더구나 서이초교는 힘 있는 법조인 학부모들이 많은 곳으로 민원 수준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 하지 않은가. 그러니까 능숙한 경력자들도 버거울 기피 업무의 극단적 스트레스들을 새내기 교사가 고스란히 떠안고 있었던 것이다. 폭력적인 업무배치와 업무량, 그의 자살 사유는 실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할지 모른다.

그런데 출근길에는 ‘선생님 때문이야’ 라고 소리치는 학생의 환청이 들리는 것 같다. 학부모는 교무실로 들이닥쳐 “교사 자격이 없다”고 질러 댄다. 교사로서의 권위는커녕 수치심에 고개를 들 수조차 없다. 몸은 지칠 대로 지쳐 있고 마음은 만신창이 되었다. 마땅히 비벼볼 곳도 없다. 학부모의 아동 학대 신고가 두려워 교권보호위원회 신청도 못 한다.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어떤 사람, 어떤 시스템도 부재하다. 비참함과 무력감, 자괴감들 속에서 왜 살아야 하나? 무엇을 할 수 있나? 당연히 실존적 회의와 자문들이 일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마지막 존엄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길로서 그는 결국 죽음을 선택했던 것이리라. 앞날이 구만리 같은 젊은 교사가 자기 결정력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선택이 오직 ‘자살’ 그것 하나밖에 없었다면, 그 사회는 얼마나 암담하고, 절망스러운가.

방학 직전이었다는 점과 죽음의 장소로 학교를 선택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방학과도 타협하지 않은 단호함과 함께 학교라는 장소에서는, ‘교사로서의 죽음’을 보여 주고 싶었던 의식적 결단 같은 게 읽혀진다. 젊은 교사의 순교에 동시대를 사는 우리가 조금이라도 빚과 슬픔을 느낀다면 우리는 그의 죽음이 분노하고 발언하는 바, 그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교사의 현실을 봐 주세요! 교권과 교육 환경을 바로잡아 주세요! 그러지 않으면 교육도 미래도 어떤 희망도 없어요!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상상해 본다. 비통하고 두려웠을 시간, 그러나 잠시, 그는 아주 고요하고 차분한 시간을 맞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교보재 준비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교구를 올려놓으며 그것들을 가지고 수업했던 날들을 떠올렸을지 모른다. 그리고는 더 많은 것들이 주마등처럼 스쳤을 것이다. 교육대에 합격하고 승리로 충만한 의욕으로 삶을 반겼던 어느 찬란한 하루, 꿈에 부풀었던 교사 임용, 그리고 가족과 지인들이 스치면서는 목도 좀 메이면서 마지막 인사도 했을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 나를 사랑해 준 모든 분들, 죄송요. 용서하세요. 제가 다시 살 마음을 낸다 해도 아무 자존감도 없이 꾸역꾸역 버티는 수준에서 살 것 같아요. 더 방치하다간 영혼마저 너덜너덜해져 버릴 것 같아요. 짐이 되고 싶진 않아요. 잠깐 슬퍼하다 훌훌 털어 버리세요. 학급의 트러블 메이커들을 떠올리고서는 피식, 웃음기마저 삐져나오지 않았을까? 이상하지, 평소 같으면 이가 득득 갈렸을 건데 마지막 길에서는 엄청 사람이 관대해진다야. 그래 니들이 무슨 죄겠니? 개념 없는 어른들이 끔찍하지. 제멋대로 살다가 괴물은 되지 말고 어떤 계기 속에서 인생과 세계에 도움이 되는 인간으로 성장하길 바랄게. 내 죽음이 그런 신성한 계기를 줄 수 있다면 머, 감사할 일이고.

그를 존경하고 따랐던 반의 예쁜 친구들도 당연히 떠올랐을 것이다. 너희들 선생님이어서 영광이었어. 쌤이 과도한 업무와 민원에 시달리면서 많이 웃어 주지 못했어. 그 점 늘 미안했단다. 쌤 없는 오늘 수업도, 쌤에 대한 충격적인 뉴스도 모두 미안. 그러나 이제는 쌤도 자신을 좀 보호하고 싶구나. 아, 따뜻한 커피라도 한 잔 준비하는 건데. 향긋한 커피 향기라도 함께 했다면 마지막 가는 길이 조금은 덜 궁색스러웠겠지? 아쉬운 게 어찌 한 잔 커피뿐이겠니. 이제는 가야 할 시간, 모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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