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와 문화재 - 윤영기 체육부 부국장
2023년 07월 31일(월) 00:00 가가
1971년 여름 공주 송산리 9호분이 긴 장마로 침수 위기에 놓였다. 당국은 장마에도 사안이 심각하다고 판단해 배수로 작업에 돌입했다. 무심코 배수로를 파던 인부의 삽날에 단단한 물체가 부딪쳤다. 벽돌을 쌓아 만든 아치형 구조물의 입구였다. 백제사와 동아시아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연 무령왕릉은 이렇게 모습을 드러냈다. 무령왕릉은 일제 강점기에도 수난을 면했다. 공주 교보 교사였던 가루베 지온(輕部慈恩)이 20년 동안 송산리 고분을 비롯한 공주 일대를 샅샅이 파헤쳤음에도 손길을 타지 않았다. 도굴꾼으로 악명 높았던 그가 송산리 6호분을 무령왕릉으로 착각한 덕분이다. 송산리 6호분 바로 뒤에 무령왕릉이 있었으나 왕릉이 두 개 일 수 없다고 판단해 손을 대지 않았다.
한강변에 있는 풍납토성은 1925년 을축년 홍수로 서쪽 성벽 일부가 붕괴되면서 주목받았다. 중국제 청동자루솥, 허리띠장식 유물 등이 쏟아져 나왔다. 일제는 1936년 풍납토성을 고적(제27호)으로 지정했고 우리문화재 보호법에 따라 1963년 사적(제11호)으로 지정됐다. 풍납토성은 수차례 발굴조사를 거쳐 백제 한성 도읍기(기원전 18년∼475년) 백제 최초 도성으로 자리매김했다. 화순 대곡리 유적 출토 청동유물(국보 143호)도 배수로 공사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됐다.
문화재가 호우로 세상에 알려지기도 하지만 실상은 피해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최근 장맛비로 국가지정문화재 67건이 훼손됐다. 국립문화재연구원에 따르면 2002년부터 2021년까지 최근 20년 간 풍수해 피해가 보고된 문화유산은 총 979건에 달한다. 문화재 풍수해 피해는 매년 증가 추세다.
최근 문화재청이 ‘국가유산 기후변화 대응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폭염, 가뭄, 장마 등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2026년부터 집중 관리가 필요한 문화·자연유산 목록을 만들고 보호대책 마련에 나설 계획이라고 한다. 문화재가 기후 재난에 취약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때늦은 조치이기도 하다. 광주·전남 지자체도 기후 위기와 지진 등 각종 재난에 대비해 촘촘하게 지방 문화재 안전망을 구축해야 할 때다.
/penfoot@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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