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도 일본 사과 꼭 받으리…김재림 할머니 별세
2023년 07월 30일(일) 20:09
화순 출신 미쓰비시 강제동원 피해자
일제강점기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에 끌려가 강제노역에 동원된 김재림<사진> 할머니가 별세했다. 향년 93세.

또 한 명의 전남 출신 일제강제동원 피해자가 일본 전범기업의 사과는커녕 배상조차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일제강제동원 시민모임은 30일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2차 손해배상 소송 원고로 나선 김 할머니가 이날 오전 노환으로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김 할머니는 태평양전쟁 당시 한국인을 강제로 동원해 노역을 시킨 일본 군수기업 미쓰비시 중공업의 피해자다.

그녀는 지난 2014년 2월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두 번째 소송에서 원고로 참여해 2018년 12월 광주고등법원에서 승소했지만, 미쓰비시중공업이 상고하면서 대법원 판결 소식을 기다리다 결과를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김 할머니는 1930년 화순군 능주면에서 1남 4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불행은 1944년 화순군 능주초등학교(옛 능주공립국민학교)를 졸업한 후 광주시 동구 불로동에 있는 삼촌집에서 가사 일을 돕던 그 해 5월에 시작됐다. 평소 공부를 하고 싶었던 그녀는 일본 모집책이 일본에 가면 ‘밥도 배부르게 먹여주고, 공부도 시켜준다’는 말을 믿고 일본으로 향했고,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에서 일을 시작했다. 14살의 나이에 온종일 군용 비행기 부속품을 만들고 비행기 동체에 페인트칠을 하는 등 혹사를 당했다.

김 할머니는 생전 “미쓰비시에서 하루종일 군용 비행기의 부속품을 깎는 일, 비행기 날개에 페인트 칠을 하는 일을 했다”며 “하루 종일 기계에 매달리다 저녁에 숙소에 돌아오면 몸을 제대로 가누기 힘들 정도로 피곤했다”고 회상했었다.

1944년 12월 7일 김 할머니는 ‘도망가라’는 고함소리를 듣고 함께 있던 사촌언니의 손을 잡고 공장에서 도망쳤다. 김 할머니는 무너지는 건물에서 사촌언니의 손을 놓치고 건물더미에 깔렸지만 구사일생으로 구출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사촌언니는 결국 세상을 떠났다.

김 할머니는 해방 후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일본에 다녀왔다는 이유만으로 따가운 사회적 시선을 받아야 했다. 근로정신대로 동원됐던 것이 군 위안부에 동원된 것으로 오해받을까 두려워 한 순간도 마음 편히 지내지 못했다고 한다. 중노동과 굶주림에 시달린 후 해방 이후에도 어렵게 살아온 그녀는 임금을 단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이후 김 할머니는 2014년 2월 27일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두 번째 소송에서 원고로 참여했지만, 아직 배상을 받지 못했다. 지난 4월 3일 대전지방법원에서 김씨를 비롯한 강제동원 피해자 4명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신청한 국내 특허권 4건에 대해 압류 결정을 내렸지만, 미쓰비시중공업 측이 판결 불복과 대법원에 상고를 제기해 지난 2018년 12월 이후 대법원에 계류된 상태다.

한편 김할머니 빈소는 광주시 서구 매월동에 있는 국빈장례문화원 401호에 마련됐다. 발인은 다음달 1일 오전 8시 30분이며 장지는 서울시 동작구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이다.

/장윤영 기자 zzang@kwangju.co.kr

실시간 핫뉴스

많이 본 뉴스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