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의 ‘밥 먹고 합시다’] 콩국수
2023년 07월 27일(목) 00:00 가가
요즘이야 가게마다 에어컨이 있어서 펄펄 끓는 뚝배기 음식을 파는 식당에도 사람들이 잘만 간다. 물론 여름이라 더운 음식 파는 집이 매출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긴 하지만. 과거에는 한여름이면 식당마다 아주 고전했다. 에어컨은커녕 털털거리는 선풍기도 부족했다. 벽과 기둥에 벽걸이형을 붙여 놓아 연신 돌리고, 더러 큰 가게는 ‘업소용 대형’이라고 해서 어른 키만 한 선풍기가 가게 구석에 놓여 있곤 했다.
그래도 날이 더울 때는 음식점이 한산해졌다. 가게마다 자구책을 내놓았다. “열무국수 개시!” “냉면 개시!” 같은 글을 페인트로 써서 가게에 써 붙였다. 빨간색으로 염색한 “냉면 개시” 깃발이 나부끼기도 했다. 냉면이래 봐야 전문점이 아니니 찰고무줄 같은 공장 면을 사고, 적당히 육수를 만들어 말아 냈다. 얼음 가게에 주문한 커다란 얼음을 송곳으로 부수어 그득히 얹어주는 게 보통이었다. 토마토나 수박 같은 과일을 올려 내는 집도 있었다. 물론 겨울엔 냉면 전문점들이 고전해서, 갈비탕이며 김치찌개, 육개장, 만둣국 같은 겨울 특별 메뉴를 팔았다. 옛날엔 확실히 계절이란 게 사람들에게 큰일이었다. 냉난방이 좋아지고, 실내 생활이 늘면서 사람들은 계절을 덜 느끼고 산다.
그래도 여름이면 어머니가 말아 주시던 열무국수나 냉면, 소면 생각이 난다. 참 별 게 없어서 계란이나 겨우 삶아서 고명을 했고, 그마저도 없으면 열무 조각이 전부였다. 그래도 우물물이나 펌프 물은 나름 시원해서 면을 말아 놓으면 한여름을 보낼 수 있었다. 나는 도시에서 살아 맷돌질하는 걸 별로 보지 못했다. 시골에서 자란 친구들은 여름에 콩국수 먹은 얘기를 하며 입을 다신다. 우리 집은 전기 믹서를 사들인 80년대 후반인가 콩국수를 집에서 해 먹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밖에서 사 먹었다. 그 시절, 그러니까 70년대, 80년대는 수입 콩이라는 개념이 없고 국내 콩 생산도 많아서 당연히 질 좋은 국산 콩으로 국수를 말았다. 커다란 얼음을 콩국수에 띄워 주는데, 천천히 녹기 때문에 점점 국물 맛이 달라졌다. 눈썰미 있는 주인은 그래서 콩국수를 처음부터 뻑뻑하고 농밀하게 말아 냈다. 그래야 얼음이 녹아도 콩물 간이며, 농도가 옅어지지 않아 맛이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같은 음식이라도 지방마다 먹는 방식이 다른 법인데, 콩국수는 달게 먹느냐 아니냐 하는 게 흥미롭다. 서울은 달게 먹지 않는다. 하지만 서울의 콩국수집이라고 해도, 주인들은 물론이고 손님이라는 서울 사람의 다수가 어차피 지방 출신인지라 식탁에 소금과 설탕이 나란히 놓였다. 설탕이 비싸던 무렵에는 ‘당원’이니 하는 대체 감미료를 넣었다고 하는데, 나는 그것까지는 보지 못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는 끝내 설탕 넣은 콩국수 맛은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가 언제부터 콩국수를 먹었는지는 잘 모른다. 다만 19세기의 음식 문화를 알 수 있는 ‘시의전서’(경상북도 지방의 고급 관료, 양반가의 음식 문화를 다룬 희귀 서적)에 나오는 것으로 보아 오래전부터 먹었을 것이다. 국수에 진심이었던 우리 선조들이 콩국수를 모를 리 없었을 것이고, 콩이야 언제든 흔했으며, 맷돌로 갈고 소창으로 밭쳐 고운 국물 내는 법을 당연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콩국수는 쉬운 듯 어렵다. 국물의 농도가 맞춤해야 하고, 무엇보다 콩의 맛이 제일로 중요하다. 그 다음으로는 콩을 얼마나 곱게 갈아 내렸나 하는 점이다. 그래서 잘 불려야 하고, 거피를 잘하여 걸리는 맛을 없애야 하며, 갈아 내는 기술이 좋아야 한다. 그냥 믹서 잘 돌린다고 되는 게 아니다. 잘 불리고, 잘 삶아야 곱게 나온다. 소창으로 거르고 거르는 정성을 더하면 더 맛있다. 최근에는 아주 고운 입자까지 갈아 내는 최첨단 기술의 믹서를 쓰면 크림 같은 콩물 맛을 낼 수 있다. 무려 가격이 천만 원 가까이 하는 믹서 기계도 있다. 놀라운 일이다.
콩국수 맛을 좌우하는 중요한 걸 빠뜨렸다. 우선은 국수다. 어떤 국수를 어떻게 삶았느냐 하는 점이다. 중국집도 여름이 되면 더운 면 요리가 덜 팔리니 콩국수를 계절 메뉴로 많이 내놨다. 특별히 좋아하는 손님도 많았다. 중국집 특유의 쫄깃하고 굵직한 면이 좋아서다. 국수만큼 소중한 게 김치다. 옛날엔 여름에 배추를 보기 어려웠으므로 보통은 열무였다. 요새는 배추겉절이를 내는 집이 많다. 그 양념 맛이 입에 착착 붙고 콩물은 구수하고 면까지 차지면 정말 좋은 콩국수 한 그릇으로 복날을 이기는 힘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어디 좋은 콩국숫집이 있으면 소개해 주시기 바란다. 한 달 전에는 목포에서 유명한 콩물집에서 국수를 먹었다. 명불허전이었다. 그 무렵이었는데, 익산 사는 선배가 전북 고창에 기막힌 콩국숫집이 있다고 방문기를 보내왔다. 어디든 전라도에 좋은 콩국숫집이 없으랴. 전라도는 국내 최대 콩 산지이며, 좋은 콩이 많이 나기로 유명한 고장이니까 말이다.
<음식 칼럼니스트>
우리가 언제부터 콩국수를 먹었는지는 잘 모른다. 다만 19세기의 음식 문화를 알 수 있는 ‘시의전서’(경상북도 지방의 고급 관료, 양반가의 음식 문화를 다룬 희귀 서적)에 나오는 것으로 보아 오래전부터 먹었을 것이다. 국수에 진심이었던 우리 선조들이 콩국수를 모를 리 없었을 것이고, 콩이야 언제든 흔했으며, 맷돌로 갈고 소창으로 밭쳐 고운 국물 내는 법을 당연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콩국수는 쉬운 듯 어렵다. 국물의 농도가 맞춤해야 하고, 무엇보다 콩의 맛이 제일로 중요하다. 그 다음으로는 콩을 얼마나 곱게 갈아 내렸나 하는 점이다. 그래서 잘 불려야 하고, 거피를 잘하여 걸리는 맛을 없애야 하며, 갈아 내는 기술이 좋아야 한다. 그냥 믹서 잘 돌린다고 되는 게 아니다. 잘 불리고, 잘 삶아야 곱게 나온다. 소창으로 거르고 거르는 정성을 더하면 더 맛있다. 최근에는 아주 고운 입자까지 갈아 내는 최첨단 기술의 믹서를 쓰면 크림 같은 콩물 맛을 낼 수 있다. 무려 가격이 천만 원 가까이 하는 믹서 기계도 있다. 놀라운 일이다.
콩국수 맛을 좌우하는 중요한 걸 빠뜨렸다. 우선은 국수다. 어떤 국수를 어떻게 삶았느냐 하는 점이다. 중국집도 여름이 되면 더운 면 요리가 덜 팔리니 콩국수를 계절 메뉴로 많이 내놨다. 특별히 좋아하는 손님도 많았다. 중국집 특유의 쫄깃하고 굵직한 면이 좋아서다. 국수만큼 소중한 게 김치다. 옛날엔 여름에 배추를 보기 어려웠으므로 보통은 열무였다. 요새는 배추겉절이를 내는 집이 많다. 그 양념 맛이 입에 착착 붙고 콩물은 구수하고 면까지 차지면 정말 좋은 콩국수 한 그릇으로 복날을 이기는 힘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어디 좋은 콩국숫집이 있으면 소개해 주시기 바란다. 한 달 전에는 목포에서 유명한 콩물집에서 국수를 먹었다. 명불허전이었다. 그 무렵이었는데, 익산 사는 선배가 전북 고창에 기막힌 콩국숫집이 있다고 방문기를 보내왔다. 어디든 전라도에 좋은 콩국숫집이 없으랴. 전라도는 국내 최대 콩 산지이며, 좋은 콩이 많이 나기로 유명한 고장이니까 말이다.
<음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