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소통의 연결 고리 - 한근우 한국폴리텍대학 전남캠퍼스 전기과 교수
2023년 07월 27일(목) 00:00
우리는 소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매일 이른 아침이면 어김없이 스마트폰의 알람 소리가 고막을 쉴 새 없이 고문해 댄다. 다시 몸을 침대에 맡기고 싶다는 생각이 잠시 뇌리에 스치지만, 스마트폰의 고함 소리가 두렵다. 출근을 위해 나만의 공간을 벗어나게 되면 우리는 선택의 여지없이 더 많은 소리에 노출되고 만다. 짹짹거리는 참새 소리, 도로를 점거하는 자동차 엔진 소리, 삼삼오오 모여 재잘거리며 학교로 향하는 학생들의 목소리, 교통 정리하는 경찰의 호각 소리 등 참으로 다양한 소리가 우리의 고막을 가만두지 않는다.

가끔은 도심 속 소음(소리)을 떠나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종편 프로그램의 주인공처럼, 조용한 산속으로 탈출하고픈 욕망이 생긴다. 그런데 누군가가 소리가 없는 곳을 찾아 깊은 산속, 바다, 무인도, 고시원 등을 찾는다면 과연 그들은 소리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외부의 소음을 완벽에 가깝게 차단하는 것이 가능한 실험 시설로 무향실(anechoic chamber)이라는 공간이 있다. 가전 제품, 스마트폰, 음향 기기 등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계 장치들의 음향(소음) 수준을 측정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은 외부에서 침투되는 소음은 물론 무향실 내부의 천장, 벽, 바닥 등에서 반사되는 음향마저 제거된 공간이다.

필자의 경우 무향실을 직접 이용한 경험이 있다. 예전 직장에서 냉장고 개발에 관한 프로젝트를 참여해서다. 가전 제품 중 큰 비중과 사이즈를 자랑하는 것이 냉장고다. 냉장고는 그 크기 만큼이나 24시간 동안 다양한 소리는 만들어 낸다. 당시 귀가 예민한 소비들자의 문의나 클레임(claim)이 들어오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소음의 원인을 찾기 위해 냉장고와 함께 무향실에 들어가 실험을 하게 된다. 무향실은 말 그대로 주변의 모든 소리가 차단된 공간으로 오로지 그곳에 머물고 있는 사물에서 발생된 소리만 들을 수 있다.

그렇다면, 통제 불능의 소리가 난무하는 지구 별에서 나만의 안락함을 찾기 위해 우리는 무향실로 곧장 향하면 되는 것일까? 이런 의구심으로 나는 실험 시료를 자처하며, 직접 무향실에 들어가 본 적이 있었다.

여느 방들처럼 무향실에도 문이 하나 있다. 외부 소음을 완전히 차단하기 위한 문으로 흔히 우리가 보아왔던 문보다는 꽤 두껍고 별도의 방음이 처리된 특수한 문이다. 무향실에 발을 내딛고 두꺼운 문을 닫게 되면 외부와는 다른 세계가 된다.(음향적으로 말이다) 들어간 무향실은 너무나 조용했다. 내 목소리와 발자국 소리는 벽, 바닥, 천장 등으로 반사되어 다시 내 고막을 자극하지 않고 어딘가로 흡수된 채 들렸다. 모든 소리가 매우 건조하게 들렸다. 계속된 정적 속에 나의 호흡과 심장 박동 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생생하게 들렸으며 그 외 내 신체를 구성하는 장기들의 움직이는 소리까지 들리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무향실 속에서 어느덧 나는 ‘소음 인간’이 되어버렸다. 아주 짧은 시간이 지속될 뿐이지만, 신체 감각은 둔해지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기증마저 나는 것 같아 그곳을 뛰쳐나왔던 기억이 난다. 무향실에서 나 자신이 소음원이 된 것을 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지구상에는 조용한 곳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우리가 소리 없이 살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소통은 인간관계에서 균형과 조화를 유지하는 핵심적인 요소이다. 그리고 소리(언어)는 소통의 시작과 끝의 연결 고리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언어라는 소리를 이용해 의사를 표현하고 감정을 전달해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입맛이 모두 다르듯, 소리도 저마다 다르게 받아들이기 일쑤다. 그렇다고 듣고 싶은 소리만 듣자고 24시간 내내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만을 끼고 생활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결국 이러한 상황이 계속된다면 의사소통의 부재를 불러오고 나아가 다양한 관계에 있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하다.

인간은 끊임없이 소리를 듣고 피드백(feedback)하며 살아가야만 한다. 누군가의 소리도 소중히 여기고 존중해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소통의 간격을 조금씩 좁혀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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