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향기] 여운 있는 이사 - 박용수 수필가·동신여고 교사
2023년 07월 24일(월) 00:00
마지막 짐은 화분이었다. 몇 번을 돌아보며 망설이더니 여남은 화분 중 하나를 껴안고 집을 나섰다. 갈 길이 멀어 식사도 생략한 채, 트럭은 서둘러 광주를 떠나 상행선 고속도로로 향했다. 몇 해 산 집을, 평생 살던 곳을 갑자기 떠나면서 그는 꼭 회복되어 돌아오겠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집을 팔고 동백 화분을 안고 떠나면서 돌아오겠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그런데도 그가 꼭 돌아오기를, 그리고 몇 십 년은 화분에 봄마다 피는 꽃을 보고, 향기를 맡으며 행복하길 바란다.

고등학교 때부터 자취 생활했다. 사글세가 10개월 기준이었으니 거의 1년 단위로 이사를 한 셈이다. 그리고 군대와 졸업, 취업 결혼까지 이사는 매해 밟지 않고 건널 수 없는 징검다리 같은 것이었다.

이사는 집을 옮기는 일로 끝나지 않는다. 간혹 몰인정한 주인장과 헤어진다는 후련함과 밤늦게 또는 새벽부터 싸우는 이웃들에게서 벗어나는 해방감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문턱에 하루하루 발자국이 축적되듯 정이라는 것도 수북하게 쌓이기 마련이다.

어떤 집은 고향이 해남이라는 아줌마가 매일 나에게 된장국을 건네며 호의를 보이기도 했다. 내 또래 여학생을 둔 아저씨는 나를 불러 바둑을 두자고 조르는 집도 있었고, 어떤 집은 외항선을 탄 형이 당구를 가르쳐주기도 했고, 형제가 많은 어떤 집에서는 애당초 나도 그 일원으로 같이 공을 차고 함께 숙식하기도 했다. 어떤 집에서는 그해 5월, 그의 큰아들과 나를 데려가 주남마을 앞 다닭실 마을 골방으로 피신시켜준 덕분에, 되레 비행기 소리, 군화 발소리에 가슴을 덜덜덜 떨며 잠을 설치기도 했다. 어찌 이뿐이랴.

켜켜이 쌓인 날들은 실상 사람들과의 인연이 쌓인 날들이고 삶은 그렇게 정을 쌓는 일이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한 숱한 날들과 수많은 사람과 인연이 숲을 이루고 산을 이룬 시간이었다.

나도 그 많은 이사를 하면서 그들에게 매번 같은 약속을 했다. 아니 똑같은 거짓말을 했다. 꼭 돌아오겠다고 말이다.

호출받고 요양원에 출근한 아내가 늦게 울먹이며 돌아온다. 며칠 전에 한 어르신이 위독해서 요양병원으로 급히 옮겼으면 좋겠다고 자녀들에게 전화했는데 모두 무덤덤하더란 말이 떠올랐다. 한 사람의 비보를 접하고 비로소 그분도 이승에서 저승으로 마지막 이사했음을 실감했다. 그들도 그처럼 꼭 찾아오겠다고, 두 손 꼭 잡고, 거듭거듭 약속했을 것이다.

만남은 어렵다. 그러나 이별은 더 어렵다. 나처럼 자녀들도 그에게 있는 눈물이 없었다. 영혼 없는 이별, 자녀들은 편리하고 쉬운 여운이 없는 이별을 택한 셈이다.

지금껏 이사할 때마다 짐 옮기는 데만 바빴다. 방을 구하고 집을 옮기는 일을 이사의 전부로 알았다. 하지만 이사는 모름지기 나를 옮기고 이웃을 옮기고 세상을 옮기는 일이다. 집과 짐은 그냥 허물이고 껍데기일 뿐이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그런데 난 그 사람들의 사랑을 소중한 보물들을 옮겨 실은 적이 없었다. 난 매번 이사했으면서도, 진정 한 번도 여운 있는 이사를 하지 못한 셈이다.

이제 딱 한 번 남았다. 이 세상의 허물을 벗고 피안으로 옮기는 한 번, 수많은 육신의 이사를 통해, 진짜 마지막은 영혼이나마 가볍도록 이리 여러 번 연습을 내게 시켰는지 모른다. 그러니 이번은 멋지게 우아하게, 이 세상의 훈훈한 아름다움-된장국, 바둑, 당구, 숙식, 그해 5월에 담긴-을 담아 저세상에 전해 주고 싶다.

내가 떠난 곳에도 아름다운 관계들이 따뜻하게 쌓이길 바란다. 난 지금 마지막 진짜 이삿짐 목록-눈물, 사랑, 애정-을 정리하고 있다. 언젠가 그리워 뒤돌아볼 수 있도록, 화분 하나 꼭 품에 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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