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수막 정치 - 최권일 정치부 부국장
2023년 07월 19일(수) 00:00
정치권이 ‘현수막 정치’에 단단히 재미를 붙인 모양이다. 끊임없이 정쟁(政爭)을 일삼는 여야가 현수막을 통해 꼴사나운 길거리 정쟁까지 벌이고 있어서다. 이로 인해 그동안 아파트 분양 등의 광고 현수막에 시달렸던 시민들은 이제 거리를 점령하고 있는 ‘정당 현수막’ 공해에 시달리고 있다.

우스운 점은 매일 치고 받고 싸움만 하는 여야가 지난해 12월 ‘정당 현수막’을 정당화하는 옥외광고물법을 합심해서 개정했다는 점이다. 당시 재석 의원 227명 중 204명이 찬성했다. 사사건건 싸움질만 하던 여야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힘을 합친 셈이다. 옥외광고물법이 개정됨에 따라 정당 명칭, 연락처, 설치 업체 연락처, 표시 기간(15일) 등을 표기하고 준수만 하면 현수막은 허가·신고·금지·제한 없이 설치가 가능해졌다.

통상적인 정당 활동 자유를 폭넓게 보장한다는 취지로 법을 개정한 것이다. 하지만 정치 신인과 비례대표는 행정안전부의 지침에 따라 정당하게 표기했더라도 당협·지역위원장이 아니면 철거 대상이다. 상업적인 현수막 또한 관할 지자체 허가가 없거나 지정 게시대에 걸지 않으면 모두 불법이다. 이 때문에 현역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법령 개정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정당 현수막이 정책 홍보 등에 이용되어야 하는데도 상대 정당을 비난하거나 조롱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어서 법 개정 취지에도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소수 정당들까지 가세하면서 그야말로 현수막 공화국이 됐다.

광주시가 지난달 중순부터 열흘간 다섯 개 자치구 불법 광고물 합동 점검을 통해 모두 2만 5570건을 철거했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현수막이 광주 도심에 내걸렸는 지를 짐작케 한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하반기부터 현수막 정치는 더욱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상된다. 뒤늦게 광주시가 조례 개정을 통해 일부 지역에서의 현수막 금지에 나선다고는 하지만, 상위법 때문에 실효를 거둘지 의문이다. 따라서 정치권이 현수막 정치에 혐오를 느끼고 불편해 하는 국민을 위해서라도 다시 법 개정을 통해 결자해지하는 게 바람직하다.

/ck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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