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예향] 지붕 없는 무대, 버스킹이 뜬다
2023년 07월 17일(월) 19:10
음악이 관객을 찾아가는 무대…꿈, 낭만, 이야기를 나누다
‘음악을 통한 소통’ 세계 거리 곳곳이 공연장…도시브랜드 가치 높여
10월 3~7일 ‘광주 버스킹 월드컵’ 55개국 792팀 중 8개팀 최종 선발

버스킹(거리공연)은 시민들의 문화예술 활동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면서 도시경쟁력을 제고시킨다. 여수시 종포 해양공원에서 매주 금·토요일에 열리는 ‘여수 밤바다 낭만버스킹’. <여수시 제공>

버스킹(거리공연) 열기가 뜨겁다. 광주 동구 주최로 오는 10월 3~7일 ‘2023 광주 버스킹 월드컵’ 본선이 열린다. 총 1억원의 상금을 내건 이번 버스킹 월드컵 글로벌 오디션에는 55개국 792팀(1732명)이 참가한 가운데 8개 팀이 최종 선발됐다. 이들은 토너먼트 방식으로 기량을 겨룬다. 또한 ‘여수 낭만 버스킹’과 ‘목포항구 버스킹’ 등은 ‘문화예술도시’, ‘해양관광도시’로서의 도시브랜드 가치를 높인다. 뮤지션과 청중이 공감하는 ‘버스킹’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보자!

크리스마스 이브에 아일랜드 더블린 그래프턴 거리에서 버스킹을 하는 록밴드 ‘U2’리더 보노. <유튜브 캡쳐>
◇더블린 버스커의 사랑과 음악…영화 ‘원스’(Once)=그녀: “왜 낮엔 안 불러요? 나 매일 보는데.”

남자: “낮엔 사람들이 아는 곡을 찾거든요. 그래야 돈을 줘요. 밤엔 안 듣잖아요.”

그녀: “내가 듣잖아요.”

어둑한 아일랜드 더블린 그래프턴(Grafton) 거리. 어쿠스틱 기타를 맨 ‘남자’는 자작곡 ‘Say it to me now’를 부른다. ‘그녀’는 노래를 마친 ‘남자’에게 직접 쓴 곡인지, 누굴 위해 쓴 곡인지를 묻는다. 그리고 “그녀를 잊었으면 이런 곡을 못 써요. 이곡을 불러주면 다시 돌아올 걸요”라고 말한다. 2007년 개봉된 아일랜드 음악영화 ‘원스’(감독 존 카니)의 도입부다. ‘남자’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진공청소기 수리가게에서 일하면서 거리에서 공연하는 버스커(Busker)이다. 가수인 글렌 핸사드와 마르게타 이글로바가 각각 ‘남자’와 ‘그녀’ 역을 맡아 영화 속 모든 곡을 만들고 불렀다.(그 가운데 ‘Falling Slowly’는 이듬해 열린 제8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제가상을 받았다.) 거리 뮤지션이 부르는 서정적 노래와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랑이 상호작용을 해 관객들에게 잔잔한 감동과 여운을 남기는 영화이다.

한국에서 버스커(Busker·거리의 악사·배우)와 버스킹(Busking·길거리에서 행해지는 공연)이라는 용어가 언론매체에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때는 2000년대 후반부터이다. 영화 ‘원스’의 흥행성공과 악기만 들고 거리로 나선 4인조 ‘좋아서 하는 밴드’(2008년), 2인조 인디밴드 ‘십센치’(2010년)의 등장, 신인 가수를 발굴하는 Mnet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 K3’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버스커버스커’(2011년)의 돌풍 등으로 인해 생소했던 용어가 빠르면서도 자연스럽게 일상 속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국립국어원은 2015년 ‘버스킹’ 대신 다듬은 말로 ‘거리공연’을 제시했다.)

지붕 없는 무대, 버스킹이 뜨고 있다. ‘버스킹 문화’는 2010년대 들어 서울시 마포구 홍익대 인근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십센치’를 비롯해 많은 버스커들이 홍대 정문앞 놀이터를 시작으로 홍대 거리 곳곳에서 버스킹을 했다. 홍대거리가 ‘버스킹의 성지’로 불리는 까닭이다. 이러한 ‘버스킹 문화’는 부산 해운대, 대구 동성로 등 전국 각지로 빠르게 확산돼 나갔다. 요즘 광주에서는 주말마다 국립 아시아문화전당앞 민주광장을 비롯해 문화전당역, 하늘마당, 광주 종합 버스터미널(유스퀘어)앞 광장 등지에서 버스킹이 이뤄지고 있다. 여수시와 목포시에서도 ‘낭만버스커 여수 밤바다’와 ‘목포 항구 버스킹’을 진행하고 있다.

독일 함부르크 레퍼반 거리에 세워진 ‘비틀즈’ 조형물. <위키미디어 커먼즈 제공>
◇예술도시와 소음민원… ‘양날의 검’ 버스킹=유명 뮤지션들은 데뷔 이전이나 무명 시절에 거리공연을 했다. ‘비틀즈’나 ‘U2’가 대표적이다. 비틀즈 신화는 독일 북부 항구도시 함부르크 ‘레퍼반’(Reeperbahn) 거리에서 비롯됐다. 이들은 1960년대 초 2년반 동안 이곳에 있는 ‘인드라’(Indra) 클럽에서 공연하며 실력을 연마했다. 존 레넌은 “나는 리버풀에서 태어났지만 성공한 곳은 함부르크”라고 말했다. 레퍼반 입구 비틀즈 광장에는 ‘비틀즈’ 멤버가 버스킹을 하는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아일랜드 출신 세계적인 록밴드 ‘U2’ 역시 무명 시절 더블린 그래프턴 거리에서 버스킹을 했다. 리더 보노는 매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이곳을 찾아 거리의 악사로 변신한다. 몇 년째 동료 예술인들과 함께 불우이웃돕기 행사를 진행하다보니 그날에 맞춰 ‘스타’들의 공연을 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그래프턴 가(街)를 찾는다고 한다.

버스킹(거리공연)은 주민과 여행자들의 발길을 이끄는 재미있고 특색 있는 문화거리 조성이라는 긍정적인 측면과 소음 민원이라는 부정적인 측면을 동시에 안고 있는 ‘양날의 검’과 다름없다. 각 도시에서 너도나도 비슷하게 대규모 버스킹 관련 축제를 열다보니 차별화가 쉽지 않기도 하다.

사실상 실내 공연이 불가했던 ‘코로나 19’ 팬데믹 기간 동안 펼쳐진 온·오프라인 길거리 공연(버스킹)은 집단 우울증, ‘코로나 블루’를 이겨내는 백신 역할을 톡톡히 했다. 수백 명의 관객이 모일 수 없는 불가역적 상황 속에서 소규모 공연과 관람이 가능한 버스킹은 답답한 일상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유다정·김지윤·신하람 홍익대 시각디자인학과 교수는 논문 ‘홍대앞 버스킹 문제 해소를 위한 커뮤니티 서비스 디자인’(2016년)을 통해 “과거 라이브 클럽이 전문 뮤지션들만의 무대였다면, 버스킹은 뮤지션, 관객 모두에게 개방성과 접근성이 훨씬 높은 새로운 공연무대로 자리 잡았다”면서 “공공 공간의 거리공연 같은 비일상적 행위는, 해당공간의 활성화부터 도시경쟁력 제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순기능을 한다. 그리고 이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한 사람들은 해당도시 공간에 대한 기억 및 유대감에 영향을 미쳐 지역문화와 시민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결론적으로 “버스킹과 같은 거리공연 대중화는 시민들에게 문화예술 활동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긍정적인 사회적 역할을 한다. 또 버스킹 문화의 건전한 발전은 문화산업 부흥에도 기여한다”면서 “버스킹 문화는 버스커와 리스너(Listener)의 인식개선을 위한 노력 그리고 정부의 제도적 지원 및 규제가 균형적으로 이뤄질 때 긍정적인 발전이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해외에서 버스킹의 폐해를 막기 위한 제도적인 장치로는 ▲버스킹 허가증 발급 ▲버스커 등록제 ▲버스킹 사전 예약제 ▲뮤지션간 음악적인 간섭 없는 거리 유지 ▲데시벨(㏈) 제한 등이 시행되고 있다.

아일랜드 음악 영화 '원스' 포스터
◇“버스킹, 음악이 관객을 찾아가는 것”=음악은 ‘만국의 공용어’라고 했다. 국적과 인종, 언어가 달라도 음악으로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버스킹은 ‘음악을 통한 소통’이다. 예상치 못한 어느 거리에서, 우연히 듣게 되는 뮤지션들의 라이브는 부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 같은 감정을 공유한다. 온 거리가 무대고, 행인은 관객이다. 여행자들의 발길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게 하는 ‘펀’(Fun)한 거리로 변신한다. 누군가는 지금 처음으로 기타를 들고 거리공연에 나설 것이다. 설렘과 답답함, 두근거림이 동시에 찾아올 것이다. 그는 거리공연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얻고자 하는 걸까? 그렇게 버스커 또한 거리공연을 통해 실력을 쌓고 성장한다. 지난 2016년에 ‘지구 반대편에서, 버스킹’(꿈의 지도)을 펴낸 조성욱 씨는 군 전역 후 2010년 호주 워킹 홀리데이를 시작으로 3년간 44개 나라의 거리에서 버스킹을 했다. 영화 ‘원스’의 무대인 아일랜드에 입국할 때 결점 투성이인 젊은 뮤지션 여권에 입국을 허용하는 도장을 찍어주는 심사관의 결단이 인상적이다.

“사실 당신은 입국할 수 없습니다. 나가는 티켓도 없고, 친구주소도 없고, 번호도 없고, 잔고도 부족합니다. 하지만 저는 당신을 믿겠습니다.”

저자는 버스킹과 일반 공연의 차이점에 대해 “관객이 음악을 찾아가는 것이 일반 공연이라면, 음악이 관객을 찾아가는 것이 버스킹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1000일에 달하는 오랜 버스킹 여행을 끝마치며 그는 여행이라는 ‘대학’에서 ‘앞으로의 삶과 새로운 도전’이 ‘졸업 작품’이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그렇게 해서 여행 후 30살 늦깎이로 대학 작곡과에 입학했다. 또한 책 말미에 ‘버스킹을 결정한 사람들을 위한 마지막 조언’을 이렇게 덧붙인다.

“…모든 것을 준비하고 떠나든, 직접 부딪치며 터득하든, 우리는 각자 다른 이야기를 풀어낼 것입니다. 부디 어디가 될지 모를 다음 여행지에서 기타를 들고 헤매는 여러분을 발견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화려한 여행 속에서 한편의 시가 되길 바랍니다.”

/글=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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