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광업소 118년 - 송기동 예향부장
2023년 07월 11일(화) 00:30 가가
‘세상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 흘린 아버지의 검은 땀, 검은 눈물 존경하고 감사합니다.’
최근 화순군 동면 복암리 구암삼거리를 지나다 다리 난간에 걸린 플래카드를 보고 차를 멈췄다. 그곳에서 400여m 떨어진 대한석탄공사 화순광업소 앞에도 여러 개의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었다. 화순군과 광주상공회의소, 국회의원, 선거 출마예정자 등이 내건 것들이었다.
‘화순 발전의 원동력, 화순광업소 노동자 여러분의 노고를 기억하겠습니다.’
‘광주전남 경제와 함께한 118년 화순광업소는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화순광업소 입구에는 ‘대한민국 석탄산업 시발지’와 ‘전남 5·18 사적지(화순 3호)’ 표지석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박현경(1883~1949)이 당시 궁내부의 허가를 받아 광업권을 등록하고 1908년 처음으로 석탄 채굴을 시작하여 우리나라 석탄 산업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길 건너편에는 1949년 여수·순천 사건 이후 빨치산 잔당들에 의해 전사한 경비 군인 두 명과 마을 주민 네 명을 기리는 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화순광업소 주변의 기념비와 위령비를 통해 화순탄광의 지나온 근·현대사를 잠시나마 돌아볼 수 있었다.
‘국내 1호 탄광’으로 개발된 대한석탄공사 화순광업소가 최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1905년 4월 5일 화순 대지주 박현경이 구암리 흑토재(黑土峙) 일대를 중심으로 구암탄광 광업권을 등록한 지 118년만의 폐광이다. ‘디지털 화순문화대전’에 따르면 “5일장이 실시되던 시절, 화순 지역 ‘장날’은 화순광업소 직원 월급날이라고 부를 정도로 지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다”고 지역 경제를 견인해 온 화순탄광의 호황 시절을 기록한다. 이제 실직 광부들의 일자리 대책과 지역 경제 침체, 폐광 대체 산업 활성화 등 당면한 과제 해결이 시급해졌다.
앞으로 광업소 시설을 활용해 화순탄광의 채탄 역사와 석탄 산업, 광부들을 기억할 수 있는 자그마한 전시관이라도 세워졌으면 좋겠다. 지하 수백m 탄광 막장에서 석탄을 캐낸 ‘산업 역군’ 광부들의 검은 눈물과 땀방울이 잊혀지지 않도록.
/송기동 예향부장 song@kwangju.co.kr
최근 화순군 동면 복암리 구암삼거리를 지나다 다리 난간에 걸린 플래카드를 보고 차를 멈췄다. 그곳에서 400여m 떨어진 대한석탄공사 화순광업소 앞에도 여러 개의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었다. 화순군과 광주상공회의소, 국회의원, 선거 출마예정자 등이 내건 것들이었다.
‘광주전남 경제와 함께한 118년 화순광업소는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화순광업소 입구에는 ‘대한민국 석탄산업 시발지’와 ‘전남 5·18 사적지(화순 3호)’ 표지석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박현경(1883~1949)이 당시 궁내부의 허가를 받아 광업권을 등록하고 1908년 처음으로 석탄 채굴을 시작하여 우리나라 석탄 산업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앞으로 광업소 시설을 활용해 화순탄광의 채탄 역사와 석탄 산업, 광부들을 기억할 수 있는 자그마한 전시관이라도 세워졌으면 좋겠다. 지하 수백m 탄광 막장에서 석탄을 캐낸 ‘산업 역군’ 광부들의 검은 눈물과 땀방울이 잊혀지지 않도록.
/송기동 예향부장 song@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