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제철 송원대·송원학원 설립자 별세…기업인·교육자로 지역사회에 평생 헌신
2023년 07월 09일(일) 20:45 가가
금광기업·송원그룹 이끌며 사회에 큰 공헌
기업인이자 교육자로 지역발전을 위해 평생 헌신해 온 고제철<사진> 이사장이 9일 별세했다. 향년 95세.
학교법인 송원대학교·송원학원 설립자인 고제철 박사는 1929년 북구 용두동에서 태어나 송원그룹, 송원대학교, 송원학원 등을 설립, 정치·경제·사회·문화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
고인은 전남대 농업생명과학대학의 전신인 광주공립농업학교를 1949년 9월 입학, 2008년 9월에 명예졸업했다.
고인은 육영사업에 남다른 애정을 쏟았다. 2011년 광주일보와 인터뷰에서 송원대 4년제 승격에 대해 “제대로 된 사학을 사회에 남기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에 모든 것을 쏟아부을 것이다. 광주·전남엔 전문대, 4년제 대학도 많다. 그러나 그 중 설립자가, 혹은 재단이 진정으로 투자하는 대학이 있는가. 나는 이것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인에게 육성사업은 기업 이익의 사회환원이었다. 평소 “기업인으로 나는 할 건 다 해봤다. 지역사회에 큰 은혜를 입었다. 이제 내 기업들을 서서히 정리해서 송원학원에 모두 투자할것”이라고 다짐하기도 했다.
고인은 광주시교육청, 광주시청과 함께 빛고을결식학생후원재단을 설립해 결식학생후원 사업이 전국에 확산되도록 지원했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일제 강점기 인쇄조합 사환으로 사회생활의 첫 발을 뗀 고 이사장은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기업인으로 통한다. 지난 1964년 건설회사인 (주)금광기업을 설립한 이래 다수 계열사를 거느린 송원그룹으로 발전시켰다. 고인은 “고흥만 간척사업이 가장 보람있었다. 무려 2060ha를 농지로 만드는 사업이었다. 지도가 바뀌었다. 완도 신지도 연륙교도 보람있는 공사였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고인은 대기업을 이끌면서도 하청업체에 어음을 발행하지 않는 기업인으로 유명했다. 하청업체에 부담을 줘서는 안된다는 경영 철학 때문이다.
지역 유통업계에도 족적을 남겼다. 1995년 3월 송원백화점을 개점해 매출 1000억원을 돌파한 데 이어 이듬해에는 1500억원을 넘어서는 등 화니, 가든과 함께 지역 백화점 시대를 열기도 했다.
고 이사장은 지역 스포츠 발전에도 기여했다. 1978년 송원학원 산하 송원여중, 송원여상에 배구부를 창단하는 등 광주 배구 중흥기의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송원여상·여중 배구팀은 대통령배, 전국체전, 대한배구협회장기 등 주요 대회를 휩쓸었다.
골프 사랑도 남달라 만 79세이던 2008년 광주 컨트리클럽에서 79타를 쳐서 국내에서 9번째 에이지슈터가 됐다. 88세이던 2017년 제주도 핀크스CC 웨스트코스 8번 홀(파3· 164야드)에서 홀인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국민훈장 무궁화장, 국민훈장 목련장, 대통령체육포장, 대통령표창, 우즈베키스탄공화국 문화포상, 석탑산업훈장, 대통령산업포장, 국민훈장모란장 등을 받았다. 백범 김구선생 기념사업회 고문,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광주상공회의소 회장, 광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유족으로는 고경주 어등산컨트리클럽 대표, 고혁주 광주컨트리클럽 대표, 3녀(경숙, 경미, 경희), 사위 정대훈 송원대 처장, 노도영 기초과학연구원 원장, 박석인 상무미르치과병원장이 있다. 장례는 학교법인 송원대학교·송원학원장으로 치러지며, 빈소는 송원대 학생회관 대강당에 마련됐다. 영결식은 12일 오전 10시에, 장지는 광산구 임곡동 가족묘원이다.
/윤영기 기자 penfoot@kwangju.co.kr
학교법인 송원대학교·송원학원 설립자인 고제철 박사는 1929년 북구 용두동에서 태어나 송원그룹, 송원대학교, 송원학원 등을 설립, 정치·경제·사회·문화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
고인은 육영사업에 남다른 애정을 쏟았다. 2011년 광주일보와 인터뷰에서 송원대 4년제 승격에 대해 “제대로 된 사학을 사회에 남기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에 모든 것을 쏟아부을 것이다. 광주·전남엔 전문대, 4년제 대학도 많다. 그러나 그 중 설립자가, 혹은 재단이 진정으로 투자하는 대학이 있는가. 나는 이것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인은 광주시교육청, 광주시청과 함께 빛고을결식학생후원재단을 설립해 결식학생후원 사업이 전국에 확산되도록 지원했다.
고인은 대기업을 이끌면서도 하청업체에 어음을 발행하지 않는 기업인으로 유명했다. 하청업체에 부담을 줘서는 안된다는 경영 철학 때문이다.
지역 유통업계에도 족적을 남겼다. 1995년 3월 송원백화점을 개점해 매출 1000억원을 돌파한 데 이어 이듬해에는 1500억원을 넘어서는 등 화니, 가든과 함께 지역 백화점 시대를 열기도 했다.
고 이사장은 지역 스포츠 발전에도 기여했다. 1978년 송원학원 산하 송원여중, 송원여상에 배구부를 창단하는 등 광주 배구 중흥기의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송원여상·여중 배구팀은 대통령배, 전국체전, 대한배구협회장기 등 주요 대회를 휩쓸었다.
골프 사랑도 남달라 만 79세이던 2008년 광주 컨트리클럽에서 79타를 쳐서 국내에서 9번째 에이지슈터가 됐다. 88세이던 2017년 제주도 핀크스CC 웨스트코스 8번 홀(파3· 164야드)에서 홀인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국민훈장 무궁화장, 국민훈장 목련장, 대통령체육포장, 대통령표창, 우즈베키스탄공화국 문화포상, 석탑산업훈장, 대통령산업포장, 국민훈장모란장 등을 받았다. 백범 김구선생 기념사업회 고문,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광주상공회의소 회장, 광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유족으로는 고경주 어등산컨트리클럽 대표, 고혁주 광주컨트리클럽 대표, 3녀(경숙, 경미, 경희), 사위 정대훈 송원대 처장, 노도영 기초과학연구원 원장, 박석인 상무미르치과병원장이 있다. 장례는 학교법인 송원대학교·송원학원장으로 치러지며, 빈소는 송원대 학생회관 대강당에 마련됐다. 영결식은 12일 오전 10시에, 장지는 광산구 임곡동 가족묘원이다.
/윤영기 기자 penfoot@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