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사명- 김 원 명 광주원음방송 교무
2023년 07월 06일(목) 22:00 가가
7월이 되면 사람들은 여름이라는 더위, 그리고 무언가를 위해 일한 나에게 보상을 주는 학생들은 방학, 직장인들은 휴가를 생각하곤 한다. 얼마 전 타 종교 성직자들과 대화의 자리를 갖게 되었다. 그 모임의 주제는 통일이었고 상호 종단에 대한 이해도 높이자는 뜻에서 마련된 자리였다. 여러 교단의 발표를 들으면서 자긍심이 높을수록 고백이 솔직하고 자기 고발이 진솔할수록 성자들의 정신에 충실하려는 노력도 진지한 것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주교를 대변하여 나온 신부는 일제 강점기에 교구가 다르기에 그리고 어쩔 수 없는 관계 속에서 친일 했던 과거와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하고 역사의 큰 획을 그을 수 있는 3·1운동에 참여치 않았던 일들을 죄인의 심정으로 고백하기도 하고, 호국 불교의 이름으로 빚어진 반민중적 행위에 대한 불교 측의 목소리도 고해성사처럼 이어졌다.
참회(懺悔)는 자신이 범한 죄나 과오를 깨닫고 뉘우치는 일을 말하며 과거의 모든 일들을 버리고 새 생활을 개척하는 초보이며 선도에 드는 초문이라 하였다. 70년대 암울했던 시절 자유와 인권 그리고 권리를 갖지 못했던 민중의 고통에 동참하여 민주화의 길을 열어나갔던 천주교 사제들의 노력이나 “반민중적 권력 집단이 자행하는 폭력과 비민주적 제도는 철폐되어야 한다”며 단오한 의지로 대중 운동의 현장에 함께한 스님들의 민중 불교 운동들이 다 지난 역사에 대한 뼈아픈 참회에 바탕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창생을 위해서라면 죽음도 기쁨으로 맞겠다던 원불교 아홉 선진들의 맹서가 하늘에 사무쳤던 법인성사의 달이 바로 다음달 8월인데 우리는 법인의 정신에 부끄럼 없는 후진으로 살고 있는가 생각해 본다. 원불교는 일원의 진리에 바탕한 교화, 교육, 자선 복지, 문화 4대 방면에 100여 년의 역사는 대체로 괄목할 만한 성장과 함께 종교적 사명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는 긍정적 평가를 내외로 받아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교단의 양적 성장에 치중한 나머지 본래의 사명을 다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고, 사회 구성원의 역할을 소홀히 했다는 비판의 소리도 들린다. 특히 지난 70∼80년대의 민주화 과정에서 과산 김현 교무, 광주교당은 5·18 당시 도청 가까이 위치해 시민과 함께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시위에 참여하고 시민들을 보호하고 희생자를 위한 천도재를 지내는 등 종교인으로서의 인도적 활동을 하였으나 교단의 안위만을 우선한 소극적 태도들은 깊은 반성을 요구받고 있다.
이러한 지적들은 밖에서 오는 비판이라기보다는 비교적 젊은 층의 원불교 교역자나 청년층의 교도들 목소리라 할 수 있다. 비록 이들의 목소리가 소수의 의견이라 하더라도 교단은 큰 무게를 실어 들어야 한다. 이러한 지적들은 개교 정신에 관한 본질적 평가의 문제일 뿐 아니라 종교가 갖는 사회적 사명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느 종교이든 창립 정신에 소홀하거나 시대적 요구에 충실하지 못할 때는 생명력이 감소되고 역사로부터도 외면당하게 된다. 최근 들어 우려하고 있는 교화의 침제 현상, 특히 청소년 교화의 부진은 이 같은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80년대 이후 급격한 증가를 보였던 천주교의 교세 확장이나 최근 들어 불교의 주변에 젊은 층이 모여드는 현상은 이러한 판단을 증거 하는 것이다. 다음 달인 8월은 원불교는 법인의 달이기도 하지만 광복의 달이기도 하고 분단의 비극이 싹 튼 달이기도 하다.
해방의 기쁨이 분단의 아픔으로 바뀐 채 70여 년이 다하는 세월을 약간의 대화 그리고 평화를 그리는 장은 되었지만 아직도 형제를 원수 삼아 살육과 증오와 저주로 맞서 왔다. 이 분단의 비극을 극복하는 일은 시대의 요구이며 민중의 염원이다.
이제 원불교뿐만 아니라 종교는 이 역사적 소명을 다하는 데 관심을 모아야 한다. 지난 시절의 부채를 갚는 일이며 역사와 민중 속에 거듭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교단의 양적 성장에 치중한 나머지 본래의 사명을 다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고, 사회 구성원의 역할을 소홀히 했다는 비판의 소리도 들린다. 특히 지난 70∼80년대의 민주화 과정에서 과산 김현 교무, 광주교당은 5·18 당시 도청 가까이 위치해 시민과 함께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시위에 참여하고 시민들을 보호하고 희생자를 위한 천도재를 지내는 등 종교인으로서의 인도적 활동을 하였으나 교단의 안위만을 우선한 소극적 태도들은 깊은 반성을 요구받고 있다.
이러한 지적들은 밖에서 오는 비판이라기보다는 비교적 젊은 층의 원불교 교역자나 청년층의 교도들 목소리라 할 수 있다. 비록 이들의 목소리가 소수의 의견이라 하더라도 교단은 큰 무게를 실어 들어야 한다. 이러한 지적들은 개교 정신에 관한 본질적 평가의 문제일 뿐 아니라 종교가 갖는 사회적 사명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느 종교이든 창립 정신에 소홀하거나 시대적 요구에 충실하지 못할 때는 생명력이 감소되고 역사로부터도 외면당하게 된다. 최근 들어 우려하고 있는 교화의 침제 현상, 특히 청소년 교화의 부진은 이 같은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80년대 이후 급격한 증가를 보였던 천주교의 교세 확장이나 최근 들어 불교의 주변에 젊은 층이 모여드는 현상은 이러한 판단을 증거 하는 것이다. 다음 달인 8월은 원불교는 법인의 달이기도 하지만 광복의 달이기도 하고 분단의 비극이 싹 튼 달이기도 하다.
해방의 기쁨이 분단의 아픔으로 바뀐 채 70여 년이 다하는 세월을 약간의 대화 그리고 평화를 그리는 장은 되었지만 아직도 형제를 원수 삼아 살육과 증오와 저주로 맞서 왔다. 이 분단의 비극을 극복하는 일은 시대의 요구이며 민중의 염원이다.
이제 원불교뿐만 아니라 종교는 이 역사적 소명을 다하는 데 관심을 모아야 한다. 지난 시절의 부채를 갚는 일이며 역사와 민중 속에 거듭나는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