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의 책무 - 윤현석 정치부 부국장
2023년 07월 05일(수) 23:00
행정 기관은 국민과 주민, 시민 삶 전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정책·사업·예산 등을 집행하고 있다. 행정을 맡고 있는 공직자, 즉 관료들은 언뜻 인사권자의 지시와 명령에 따를 것 같지만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인사권자는 임기가 정해져 있는 반면 관료들은 퇴직까지 오랜 기간 조직 내에 머물기 때문이다. 따라서 잠시 ‘영혼 없이’ 복지부동의 자세로 버티는 경우도, 하는 척만 하다가 다시 되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대통령 직선제, 민선 자치가 시행된 뒤 제대로 된 인사권자라면 취임과 동시에 혁신을 강조한다. 주권자에게 더 질 높은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관료 중심의 시스템은 관행·관례에 익숙하며, 집행 기관이라는 ‘타이틀’은 여전히 갑의 지위를 누리게 한다. 이를 바꾸기 위해 인사권자는 치밀한 전략, 관련 지식, 행정 시스템에 대한 이해 등을 두루 갖춰야 하는데, 현실에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정부와 지자체 등이 각 분야의 전문가를 찾아 채용하는 이유는 관료 조직에 자극을 주고, 전문 지식을 행정 시스템에 접목시켜 공공의 이익 증진, 시민 삶의 질 향상 등에 기여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총괄 건축가 제도 역시 이러한 이유로 유럽, 일본에서 시작돼 서울·광주에서도 시행되고 있다.

광주의 총괄 건축가가 전일·일신방직 부지 29만 6340㎡에 아파트 4186세대, 49층 높이의 특급호텔 등이 들어서는 국제 설계 공모를 주도해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46만 5168㎡의 상무2지구에 2459세대가 공급됐던 것과 비교하면 면적은 63.7%에 불과한데 아파트 공급량은 1.7배에 이르는 ‘아파트 계획’을 내놓은 것이다. 개발 업체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공업 지역에 대한 고밀 개발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면서, 수준 높은 디자인만 강조하고 있다. 대형 쇼핑몰 이야기는 온데간데없이 또다시 맥락 없는 고층 고가 아파트 단지 하나를 조성하기 위해 ‘광주의 자산’을 희생시키는 것이다.

공공이 누려야 할 공간이 누군가의 부 축적을 위해 사라진다. 도시 공간의 공공성 증진과 시민 모두가 바라는 지속가능한 공간 조성을 미션으로 하고 있는 총괄 건축가는 전문가로서 책무를 다하고 있는 것인가. /윤현석 정치부 부국장 chadol@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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