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어른 어떻게 다를까- 송민석 수필가·전 여천고 교장
2023년 07월 04일(화) 23:00
우리의 전통 시대에는 관례(冠禮)라는 게 있었다. 요즘 성년의 날 치르는 성년 의식이다. 총각머리 대신 상투를 틀고 관을 씌워주며 어릴 때부터 불려 온 이름을 대신할 자(字)를 지어주는 것이 관례의 중요한 절차다. 관을 씀으로써 누가 봐도 더 이상 아이가 아님을 알 수 있게 했을 뿐 아니라, 이름을 아무나 함부로 부르지 않음으로써 이제 어른으로서 대접해 주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날을 시작으로 일상의 외관과 호칭이 달라지는 것은 그 자체로 본인에게 큰 변화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전통 시대의 관례를 부활시키자는 것은 물론 아니다. 정해진 의식을 치른다고 어느 날 갑자기 명실상부한 어른이 될 리도 만무하다. 어른이 되는 것을 두렵고 소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그저 어쩌다 보니 나이를 먹고 이런저런 사회적 관계 속에서 어른이 되었을 뿐, 진정 어른으로서 갖추고 배워야 할 것들은 놓친 채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한다.

“요즘은 어른이 없다”라는 말을 많이들 한다. 어른다운 어른, 존경받을 만한 어른이란 무엇일까?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오래 사는 과정에서 축적된 경험과 지식이다. 그러나 나이 많은 사람이 아는 것이 많다는 것은 직접 경험에 의존했던 시대에나 통할 이야기다. 더구나 각종 전문가 집단과 웹 검색 도구가 그 자리를 차지한 오늘, 어른이 지닌 경험과 지식은 급변하는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마당에 어른이 꼭 필요하기는 한 것일까?

그런데도 어른다운 어른이 없다는 탄식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일으키는 것을 보면, 여전히 우리는 어른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개별적인 지식과 정보들을 얻을 수 있는 경로와 방법은 늘어났지만, 그것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오늘날 여전히 우리에게 필요한 어른은, 말이나 글이 아니라 자기 삶으로 그 길을 보여주는, 그래서 “저런 어른이 되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게 하는 어른이다.

성리학의 대가 퇴계 선생의 생애를 일관하는 핵심 사상은 경(敬)이다. 경은 항상 자기 분수와 정도를 지켜 마음을 가지런히 하고, 매사에 정성을 다하며, 잘못됨이 없나 스스로 조심하고 살피는 자세다. 따라서 일의 경중과 관계없이, 모든 일에 겸허한 자세로 조심하고 자중자애(自重自愛)하는 생활의 지혜가 필요하다.

경거망동하는 이들에게 우리는 자중자애하라고 말한다. 자신의 분수를 모르고 날뛰는 사람들, 그리고 이치를 헤아리지 못해 잘못을 저지르는 이들과 이기심이 넘친 아전인수격인 사람들에게 가장 어울리는 말이 자중자애가 아닌가 한다.

노인만 있는 사회에서는 품위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노인은 나이에 기대어 대접받으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이 자기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믿기에 노인은 외톨이가 되기 쉽다. 그렇지만 참다운 어른은 언행에 자중하는 모습을 보이며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다. 연륜을 인정받아 한마디로 존경받는 사람이다. 어른이 많은 사회는 더 없이 강하다. 천년 고목이 나무 그늘을 만들고 그 아래 사람이 모이듯이 고고한 인격의 향기가 풍기는 삶을 산다면 존경받는 어른이 아니겠는가.

“가난한 집안 일지라도 마당을 깨끗이 쓸고, 여자가 머리를 곱게 빗으면 외관과 외모가 화려하지 않아도 품위가 우아해진다고 했다. 우리는 가난해도 마음의 양식을 갖고 자기를 가꾸어야 한다.” 지혜의 고전인 ‘채근담’(菜根譚)에 나오는 말이다.

귀가 순해지고 생각하는 것이 원만해져 들으면 곧 이해가 되는 나이인 예순 살을 공자는 ‘이순’(耳順)이라고 불렀다. 모난 데가 없이 부드럽고 너그럽고 속이 깊은 때라는 뜻이다. 이해할 수 없던 것을 이해하고, 포용할 수 없던 사람을 포용하며, 나눌 수 없던 것을 나누는 후덕이야 말로 나이 듦의 가장 큰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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