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영아’ - 최권일 정치부 부국장
2023년 07월 04일(화) 22:00
최근 출생 통보제 도입을 위한 가족 관계 등록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출생 통보제란 의료 기관이 출생 정보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해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하고, 지자체는 이를 확인하고 일정 기간 신고가 되지 않으면 직권으로 출생 신고를 할 수 있는 제도다. 부모가 고의로 출생 신고를 하지 않은 미등록 ‘유령 영아’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른바 ‘유령 영아’는 말 그대로 출생 신고가 되지 않아 정부 기관 서류상에 존재하지 않은 ‘무적자’(無籍者)다. 인권단체 등이 수년 전부터 요구해 왔고 정부도 필요성에 공감해 2년 전 법안이 발의됐다. 최근 ‘수원 영아 냉동고 유기 사건’ 등 출생 신고도 하지 않은 아기를 방치해 숨지게 한 뒤 시신을 유기하거나 방치한 사건이 잇따르면서 뒤늦게 법안 처리가 급물살을 탔다. 조금 더 일찍 법안이 통과됐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감사원 감사 결과 지난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태어난 영유아 가운데 출생 신고가 되지 않은 ‘무적자’는 총 2236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에 대한 지방자치단체 전수 조사와 수사 의뢰가 이어지고 있고, 경찰청 수사본부는 ‘유령 영아’ 사건 193건에 대해 수사 중이다. 이 가운데 이미 사망이 확인된 영아만 11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행방이 불분명한 영아가 170명이 넘는 만큼 희생자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안타깝다.

출생 통보제는 법안 공포일로부터 1년 후 시행되지만, 사각지대는 여전하다. 출산 기록이 남는 것을 원치 않는 산모들의 ‘병원 밖 출산’이 증가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미신고 외국인 영유아들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 이에 ‘병원 밖 출산’을 막기 위한 보호 출산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보호 출산제는 임신부가 신원을 노출하지 않고 의료 기관에서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일각에서 양육 포기 증가와 아동의 부모 알 권리 침해 우려 등을 제기하면서 여야가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세상에 발을 내디뎠지만, 애정과 사랑을 듬뿍 받아야 할 부모들에게 버림받거나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는 아이들이 없도록 정부와 정치권 모두가 지원 체계 구축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때다.

/최권일 정치부 부국장 ck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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