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스완 - 임동욱 선임기자·이사
2023년 07월 03일(월) 22:00 가가
풍성한 흰색 깃털을 지닌 백조는 오랫동안 우아함과 평화를 상징해 왔다. 호수를 평화롭게 헤엄치는 우아한 모습이 백조의 일반적 이미지였다. 발레 작품인 ‘백조의 호수’에서 청순하고 갸냘픈 발레리나의 모습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1700년대 호주와 뉴질랜드 등에서 흑조(black swan)가 발견되면서 기존 백조에 대한 선입견이 일거에 무너졌다. 이로 인해 ‘고정 관념과는 전혀 다른 상상’을 은유적으로 나타냈던 블랙 스완의 뜻은 ‘불가능하다고 인식된 상황이 실제로 발생하는 것’으로 의미가 바뀌었다.
블랙 스완이라는 용어는 경제 분야를 중심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레바논 출신의 투자 전문가인 나심 탈레브가 1987년의 블랙 먼데이, 2001년의 9·11 테러,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 등의 공통점을 언급하며 일단 발생하면 예기치 못한 엄청난 파급 효과를 가져오는 현상을 블랙 스완으로 묘사했다.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사태도 블랙 스완으로 볼 수 있다. 국내에선 최태원 SK 그룹 회장이 지난달 열린 확대 경영 회의에서 올 하반기 블랙 스완 가능성을 언급하며 대응책 마련을 강조, 주목받기도 했다.
블랙 스완은 세계의 정치·경제·안보 환경 등이 요동치면서 현실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국제 안보 질서는 미국과 서유럽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진영과 중국, 러시아 등 권위주의 진영 간의 대립 구도가 뚜렷해지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 장기화되는 미·중 갈등, 대만 해협의 긴장 고조 등 일단 터지면 전 세계를 뒤흔들 상황이 즐비하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탈세계화 등으로 국제 경제도 요동치고 있다. 각국 정부는 국제 공조보다는 각자도생의 길을 찾으며 불확실성의 위기감은 확산되고 있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도 심각하다. 정치권은 정쟁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의 대립은 더욱 가팔라질 전망이다. 여기에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으로 민생 경제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내수 경제의 근간인 소상공인 및 자영업자들은 이제 막다른 골목으로까지 내몰리고 있다. 블랙 스완이 가끔 찾아오는 철새가 아닌 텃새가 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위기 관리를 위한 윤석열 정부와 정치권의 엄중한 각성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