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의 고대 풍경 - 윤영기 체육부 부국장
2023년 07월 03일(월) 00:00 가가
신안군 흑산도는 고대부터 국제 항로 가운데 하나였다.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은 1123년 고려 인종 때 고려땅을 밟았다. 중국 명주에서 출발해 흑산도를 거쳐 서해안을 타고 북상해 고려 외항인 예성강에 도착했다. 그는 고려 정세·풍속 등을 글로 남긴 ‘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 흑산도를 언급했다. “옛날에는 이 곳이 사신의 배가 묵는 곳이었다. 관사도 아직 남아 있다.” 아쉽게도 서긍은 흑산에 기착하지 않아 자세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으나 흑산도의 위상을 엿볼 수 있다.
일본 승려 엔닌(圓仁)도 신라 문성왕 9년(847년)에 흑산도를 거쳐 당나라로 들어갔다. 그는 ‘입법구당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에서 “흑산도는 동서로 길게 늘어서 있으며 백제의 제3 왕자가 도망쳐 피난한 곳인데, 삼사백 호 민가가 살고 있다”고 기록했다. 지난 1975년 발견된 ‘신안 보물선’은 국제 무역 항로였던 신안을 대변한다. 이 배는 1323년 중국 경원(현재 닝보)항에서 출발해 일본 하카타항으로 항해하다 신안 앞바다에 침몰했다.
최근 흑산도 상라산 동쪽 기슭에 있는 무심사지 발굴 조사에서 통일신라시대 건물지 두 동, 축대, 석렬 네 기 등의 유구가 확인됐다. 인화문 토기편을 비롯해 금동불상 발편, 중국제 도자기편, 연화문 막새편 등이 출토됐다. 무심사지 주변 상라산성, 제사터, 관사터 발굴 조사에서는 중국제 동전과 도자기도 무더기 발굴됐다. 유물들은 신안이 통일신라부터 고려 때까지 동아시아 남방항로의 해상 무역 거점항이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2011년 안좌도 ‘배널리 고분’에서는 5세기경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투구·갑옷·칼·창·화살촉·장식구(옥) 등 무기류가 다량 발굴됐다. 이들 무기류는 신안이 군사 요충지였음을 말해주는 방증이다.
아름다운 1004섬을 보유한 신안의 감춰진 역사가 신안군의 노력으로 새롭게 조명돼 반갑다. 꾸준히 발굴이 이어지고 학계의 연구가 보태진다면 신안은 역사적으로도 보배로운 섬이 될 것이다. 신안이 섬의 풍광을 즐기려는 일차원 관광을 넘어 우리 고대사까지 되새기는 장소로 거듭나면 더 좋겠다.
/penfoot@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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