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박행순 전남대학교 명예 교수, 전 카트만두대학교 객원 교수
2023년 06월 27일(화) 23:00
네팔 어린이들이 한국인을 만나면 기대감과 호기심에 가득 찬 얼굴로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라고 묻곤 하였다. 이는 한국에서 봉사하러 온 대학생들이 자주 가는 곳이 초등학교였고 가르치는 몇 마디 한국어 중 빠지지 않는 이 문장을 어린이들이 외웠기 때문이다.

필자가 12년 전 네팔에 객원교수로 갔을 때 재미있는 이름들을 접했다. 우선 국호, 네팔(Nepal)에 대하여 “내 팔로 네 팔을 안는다”거나 “네 팔에 내 팔을 맡긴다”는 등 재치 있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보았다. 처음 몇 년간 강의한 곳은 파탄(Patan) 왕국이 있었던 곳에 세워진 파탄 대학이었다. 이름이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 이 대학은 네팔의 지역 간 의료 혜택의 격차를 줄이는 것을 사명으로 삼는 야심찬 신설 의과대학이었다. 의료 시설들이 집중된 도시민들과 산지 주민들의 평균 수명은 20년 가까운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의대 설립자는 자동차 열쇠 비슷하게 들리는 카-키(Karki) 박사였고 주임 교수는 공갈(Gongal) 박사였다. 네팔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 가운데 특이한 이름을 가진 그분들과 함께한 시간이 추억으로 남아 있다.

박성광 명예교수가 출간한 ‘심장이 멎기 전, 안녕 내 사랑’에 추천사를 썼던 당시 전북대병원 신장이식센터장, 이식 교수는 “아버지께서는 내가 태어난 날이 식목일이어서 ‘이식‘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셨다. 나는 이름 때문에 노력 없이(?) 이식 분야에서 소위 반절은 먹고 들어간다”라고 했다.

김말자 씨는 끝순이 막내라고 너무 가볍게 촌스러운 이름을 지은 아버지께 어릴 적에는 섭섭한 마음을 품었었다. 결혼해서 어느 땐가 김밥집을 차려 문전성시를 이루었고 뒤늦게 아버님의 예지에 감탄했다고 한다.

웃음을 유발하는 이름들에 비하면 외할아버지께서 작명가에게 받아오셨다는 내 이름은 너무 평범했다. 그러나 20여 년 전, 한 사고를 겪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어느 날 밤길에 보도블록에 걸려 앞으로 고꾸라졌다. 우리 속담에 ‘재수가 없으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는데 앞으로 넘어졌으니 두말해 무엇 하랴? 지나가던 행인이 일으켜 세우고 택시에 태워 주어서 동네 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았다. 코뼈 골절에 윗입술을 크게 다쳐 성형외과에 입원하여 두 주간 치료를 받아야 했다. 골절된 코뼈가 다시 붙도록 처치하는 과정에서 양쪽 콧구멍을 단단히 틀어막았으니 꼼짝없이 입으로만 숨을 쉬어야 했다. 입안과 혓바닥은 바짝 마르고 코를 통한 숨길이 막힌 상태에서 삶의 질은 한 차원 밑으로 곤두박질친 느낌이었다. 그간 숨 쉬기를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쉽게 생각했다.

창세기에는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숨 쉬기는 삶과 죽음을 가르는 가장 기본적인 생명 활동이며 나의 의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고 엄청난 축복으로 받아들여졌다.

그 암울했던 시간들은 자발 호흡, 코로 숨을 쉬는 것만으로 행복을 느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드디어 코로 숨을 쉬게 되었을 때의 그 상쾌함, 후련함, 편안함과 자유로움에서 발견한 행복을 잊지 않도록 내 이름으로 연결시켜서 자기소개를 한다. “코로 숨 쉬는 매 순간, 박세게 행복한 순간, 박행순입니다.” 어떤 분들은 나를 “행복한 순간님~”이라고 불러 주기도 한다.

김춘수 시인은 ‘꽃’에서 다음과 같이 이름에 의미를 부여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상대의 이름을 알고 그 이름을 불러 주는 것은 관계 맺기의 시작이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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