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 잡는 유상 증자 - 장필수 사회담당 편집국장
2023년 06월 26일(월) 22:00 가가
주식회사가 자본금을 늘리는 증자(增資)에는 무상 증자와 유상 증자가 있다. 무상 증자는 주주들의 출자 없이 회사가 돈을 내 주주들에게 공짜로 주식을 나눠주는 것인데 반해 유상 증자는 기존 주주나 새 주주에게 돈을 받고 주식을 분배한다. 잉여금이 있는 회사는 무상 증자를 통해 주주 환원에 나서지만 돈이 없는 회사는 주주들에 손을 벌려 빚을 갚거나 새 사업 자금으로 활용한다. 주식 시장에서 통상 유상 증자가 기존 주주들에게 악재로 작용하는 이유다.
신라젠은 면역항암제 개발에 대한 기대감으로 한때 코스닥 시장 시가 총액 2위까지 올랐다가 임상 실패로 폭락하면서 17만 명의 소액 주주들에게 고통을 안겼다. 상장 폐지 위기를 극복하고 2년 5개월 만에 거래가 재개됐지만 경영 정상화 과정에서 저가에 발행한 유상 증자 물량이 올해 초부터 쏟아져 나오면서 또다시 주주들을 울리고 있다. 기존 주주가 아닌 제3자 배정으로 유상 증자를 했는데 당시 주가의 26% 가격에 발행한데다 보호 예수 기간(주식을 팔 수 없도록 한 기간)도 짧아 대규모 물량 출회에 기존 주주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이번에는 국내 1위 영화관 운영회사인 CJ CGV가 1조 200억 원의 유상 증자를 발표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발행 규모도 역대급이지만 56%를 주주 배정으로 하면서 가격도 당시 주가의 절반 가격으로 발표해 사흘 만에 주가가 30% 넘게 폭락했다. 주주들이 반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지분의 절반가량을 가진 CJ 지주회사는 정작 소액만 출자하면서 비상장 자회사의 현물 출자로 CGV 지분은 유지한다는 데 있다. 유상 증자를 통해 마련한 자금의 대부분을 빚 갚는데 쓰고 정작 신사업에는 생색만 낼 정도로 투자하는 점도 주주들이 반발하는 대목이다. 주주들은 개미 호주머니를 털어 빚을 갚겠다는 것이라며 경영 실패의 책임을 일반 주주들에게 전가하는 꼴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주식 투자는 전적으로 투자자들의 책임이다. 그렇지만 대기업조차 주주 가치 제고보다는 경영난을 돌파하기 위해 개미들의 주머니를 터는 관행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개미 잡는 유상 증자, 국내 주식 시장이 극복해야 할 과제다.
/장필수 사회담당 편집국장 bungy@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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