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 의료와 중증 의료를 되살리는 길- 심상돈 동아병원 원장
2023년 06월 20일(화) 22:00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진료비 내역서를 받아 보면 잘 모르는 항목들로 가득하여 뭔가 손해를 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 진료비의 기본 바탕은 ‘행위별 수가제’이다. 병원에서 하는 모든 의료 행위에 대한 가격을 정하고 그것을 사용한 만큼 진료비를 지불하는 제도이다. 행위별 수가는 상대 가치 점수에 환산 지수를 곱하여 금액으로 나타낸다.

상대 가치 점수란 진료와 관련된 모든 행위에 대한 점수로 업무량(의료 행위에 대한 전문가로서의 노력과 시간에 대한 점수), 진료 비용(간호사, 의료기사 등 임상 인력의 임금, 진료에 사용되는 시설, 장비와 치료 재료를 고려한 점수), 위험도(불가피한 의료 사고와 진료과별 위험도를 고려한 점수)를 고려해 산정한다. 환산 지수는 상대적 점수를 화폐 단위로 바꾸어 주는 지표로 상대 가치 점수 1점당 가격이다. 의원의 초진 상대 가치 점수는 188.11점, 재진은 134.47점이고 환산 지수는 의원은 1점당 87.6원, 병원은 77.3원이다.

‘행위별 수가’에 기초한 진료비 중 일부를 환자가 직접 병원에 지불하고(본인 부담금) 나머지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병원으로 지급한다(요양 급여 비용). 2021년 총요양 급여 비용은 95조 4802억 원이며 2022년 상반기 증가율 12.9%를 반영하면 2022년 총요양 급여 비용은 106조 정도로 추정된다. 2022년 총수입은 88조 7773억 원, 총지출은 85조 1482억 원이다. 당기 흑자가 3조 6291억 원, 누적 적립금은 23조 8701억 원으로 매년 단기 흑자만큼 증가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재정이 중요하다. 수입은 대부분이 보험료이고 약간의 국가 지원금이 있다. 2022년으로 종료될 예정이었던 국가 지원금(보험료 수입의 14% 정도)이 2027년까지 5년 연장되어 17% 정도의 보험료 인상을 피할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OECD수준인 30~40%와는 비교가 안 된다.

매년 의료 수가 확대를 위해 보건복지부와 줄다리기를 한다. 협상은 환산 지수의 인상을 위한 협상이다. 하지만 협상을 하기도 전에 국민건강보험공단이 필요한 재정 규모를 미리 정해 버리기 때문에 협상의 의미가 없다. 올해는 작년보다 1.9% 인상되었다. 흑자 재정을 정치권과 타 의료 분야의 눈치를 보면서 국민의 안전에 중요한 필수 의료, 중증 의료의 의료수가 확대에 사용하지 않는다. 의료 수가는 오래전부터 원가에 못 미치는 적자이다. 이로 인해 필수 의료, 중증 의료가 가장 먼저 무너지고 있다. 이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과 직결되고 방치하면 국가의 건강이 위험해 질 수 있다.

의료 수가의 또 다른 축인 상대 가치 점수를 결정하는 핵심은 업무량과 위험도이다. 상대 가치 점수는 진료비가 객관적으로 결정되고 새로운 의학기술 발달을 유도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의료의 상대적인 업무량과 위험도에 따른 특수성이 고려되지 않고 천편일률적으로 적용되어 필수 의료와 중증 의료를 붕괴를 심화시키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업무량과 위험도가 증가했지만 상대 가치 점수는 이를 잘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환산 지수 확대로 전체 의료 수가의 인상도 필요하지만 필수 의료, 중증 의료 분야의 상대 가치 점수를 확대하는 일이 더 우선이다. 의사 단체를 비롯한 의료전문가 단체는 상대 가치 점수에 대한 연구에 집중해야 한다. 상대 가치 점수와 환산 지수를 결정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민건강보험공단 재정운영위원회,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의 구조 변화가 절실하다. 의료 소비자 위주의 구성으로 의료 공급자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다. 의료 전문가인 공급자가 정책의 형성과 결정 과정에서 공정성과 최소한의 견제를 유지 할 수 있는 구조로의 변화가 필요하다. 단기적인 가산점과 성과급 지원이 아닌 국민건강보험에 대한 국고 지원금을 늘리고 상대 가치 점수를 개선하는 일이 필수 의료와 중증 의료를 되살리는 현명한 방법 중 하나이다. 더 이상 의료 종사자의 보람과 성취만으로는 필수 의료와 중증 의료를 유지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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