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희·오재형 모자 감독 “소녀에서 장애를 가진 삶까지 제 인생 담았죠”
2023년 06월 19일(월) 20:40
다큐애니 ‘양림동 소녀’서울국제노인영화제 대상
‘임 행진곡’ 제작 등 문화운동 1세대…그림·내레이션
25일 광주독립영화제서 상영 “내년 책으로 출간 예정”

‘양림동 소녀’를 만든 임영희·오재형 모자.

뇌졸중으로 갑자기 쓰러진 후 재활중인 엄마에게 아들은 싸인펜과 크레파스를 선물했다. 익숙치 않은 왼손으로 엄마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진도에서 광주로 유학 와 수피아여고를 다니던 시절까지, 떠오르는 대로 그림을 그리고 짧은 글을 썼다. 엄마의 그림을 본 아들이 말했다. “엄마의 일생 전체를 한번 그려보면 어때요. 영화가 될 수도 있을 것같아요.”

엄마는 광주에서 문화운동하던 이야기, 노년에 맞닥뜨린 장애인의 삶까지 차근차근 그려나갔다.

임영희·오재형 모자(母子) 감독이 함께 만든 30분 분량의 다큐메이션(다큐멘터리+애니메이션) 영화 ‘양림동 소녀’는 지난달 열린 제15회 서울국제노인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영화는 엄마의 그림책을 그대로 보여준다. 엄마의 내레이션이 흐르고, 화면 밖에서 호응하는 아들의 음성도 들려온다. 마치 아이가 그린듯한 그림과 함께 펼쳐지는 잔잔한 내레이션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엄마 임영희(67)씨는 광주전남문화운동 1세대로 꼽힌다. 극단 ‘광대’ 단원으로 활동했고, 5·18의 진실을 알리는 카세트 테이프 제작, ‘임을 위한 행진곡’ 제작에도 참여했다. 운동을 하다 끌려가 고문을 당했고, 5·18의 한복판에서 동료의 죽음도 접했다. 양심수 후원을 했던 ‘송백회’에서도 활동했다. ‘명랑소녀’였던 그는 사회가 조금이라도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길목에서 작은 역할이라도 하려 했다.

‘피아노, 프리즘’으로 202년 부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아들 오재형 감독은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그는 영화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곡을 만들고, 피아노를 연주한다. ‘양림동 소녀’의 음악과 피아노 연주 모두 그가 맡았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작에도 함께 참여했었던 남편 오정묵씨는 영화 포스터의 글씨를 썼고, 오른손이 부자유스러운 그녀를 위해 양재학원에 다니며 직접 옷을 만들어준다.

“치열하게 살아온 삶이었지요. 그러다 보니 ‘나’를 나타내본 적이 없었던 듯해요. 그래서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봐요. 광주로 유학올 때 직접 디자인한 옷을 양장점에서 맞춰 주던 아버지 이야기부터 문학소녀였던 여고시절 등을 그리며 많은 위로를 받았어요. 나에 대한 탐구의 시간이자 나를 만나는 과정이었습니다.”

‘양림동 소녀’는 한 사람의 구술 생애사(史)이자, 광주 전남의 시대사이자, 지역의 민주화·문화운동사다. 영화에는 미모사 양장점, 영화를 통해 꿈을 꾸게 해주었던 광주극장, 왕자관이 등장한다.

아들에게 엄마가 살아온 이야기를 담담히 들려주는 내레이션은 대본 없이 녹음했다. 뇌졸중 영향으로 말은 어눌하지만, 영화관을 찾은 사람들은 그의 말에 귀기울여줬고, 상영 후에는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영화를 통해 사람들은 어린 소녀, 청년, 노인, 여성, 장애인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요. 다양한 임영희를 통해 자신들의 삶도 한번씩 들여다 보는 거죠. 그 시절, 그 현장에 서 있는 자기의 모습을 새삼스레 떠올려 본듯 합니다. 나를 먼저 사랑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에너지가 있어야 남의 아픈 곳, 슬픈 곳도 들여다볼 수 있죠. 오월 정신을 바탕으로 청년·여성 운동 등에서 새로운 씨앗들이 심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양림동 소녀’는 내년 쯤 책으로 출간될 예정이며 오는 25일(오후 1시30분) 광주독립영화관에서 열리는제25회 광주독립영화제에 초청돼 관객들을 만난다.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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