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향기] ‘행복한’ 이야기- 김향남 수필가
2023년 06월 19일(월) 00:00
누가 내게 ‘행복’이란 무엇인가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약간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거나 글쎄 그게 뭘까 오히려 되물어 볼 확률이 높다. 누구나 원하는 것인 줄도 알겠고, 좋은 것인 줄도 알겠고, 궁극의 목적이라는 것도 알긴 알겠는데, 바로 이거야! 라고 명확한 답변을 내놓기는 쉽지 않다는 말이다. 딱히 손에 잡히는 것도 아니고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닌,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는 저 마음의 움직임을 몇 마디의 말로써 표현해 낼 엄두는 나지 않는다. 대신 알려진 이야기 몇 편을 꺼내 답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먼저 ‘행복한 한스’ 이야기. 사실 ‘행복한 한스’는 ‘어리석은 한스’ 혹은 ‘바보 한스’라고 해야 맞지 않을까 싶은 좀 터무니없는 이야기다. ‘한스’는 7년 동안 열심히 일한 대가로 받은 황금 한 덩어리를 이러저러한 이유로 자꾸 다른 것들과 바꾸어나가다 결국은 빈손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 놓고도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자신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기뻐하고 있으니, 과연 제정신인가? 묻고 싶어진다. 물론 고향까지는 아직 멀고 먼 데다 출발할 때와는 달리 몸과 마음도 천근만근 무거워져 아무리 황금이라도 던져 버리고 싶었을 것은 이해가 된다. 지치고 힘들 때는 모든 게 다 귀찮은 법이니까. 그렇더라도 그 금덩이를 정말로 다른 것과 바꾸어 버린다? 그렇게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 금덩이로 말할 것 같으면, 그동안의 자신의 노고는 물론 고향의 어머니까지 모든 것을 보상해 줄 가장 강력한 조건이지 않은가 말이다. 하지만 ‘한스’는 보기 좋게 우리를 넘어선다. 금덩이에서 말 한 마리로, 말에서 암소로, 암소에서 돼지로, 돼지에서 거위로, 거위에서 숫돌로, 숫돌에서…. 그렇게 탈탈 빈손이 된 ‘한스’는 아쉬움은 잠깐,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콧노래를 부르며 고향의 어머니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다.

다음은 ‘행복한 왕자’. 그는 부유하고 모자람 없이 살아온 궁전의 왕자였다. 죽은 후 거리의 동상이 되어서야 비로소 도시의 온갖 불행과 가난을 마주하게 된다. 어느 날 뒤늦게 남쪽 나라로 날아가던 제비가 왕자의 동상에 앉게 되고, 왕자는 제비에게 어려운 사람들을 함께 도와 달라고 간청한다. 제비는 왕자를 대신해 차례차례 그의 몸을 치장하고 있는 보석들을 떼어다 힘든 이웃들을 돕는다. 그러다 돌아갈 시기를 놓친 제비는 그만 추위로 얼어 죽고, 다 떼어내 볼품없어진 왕자의 동상 역시 쓰레기통으로 던져진다. 어느 날 신이 천사를 불러 지상의 도시에서 가장 존귀한 것을 두 가지만 가져오라고 한다. 천사는 쓰레기통 속에서 왕자의 녹슨 심장과 제비의 시체를 가지고 간다. 그러자 신은 흡족해 하면서 이들을 축복했다는 이야기.

‘행복한 청소부’는 거리 표지판을 닦는 청소부 이야기다. 주인공은 날마다 바흐, 베토벤, 하이든, 괴테, 브레히트 등 음악가와 시인들의 거리 표지판을 닦는 일을 한다. 그는 아주 성실한 청소부였으며 자기 직업에 만족하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그에게 엄청난 변화를 불러오는 일이 생겼다. 한 아이와 엄마가 주고받는 말을 들으며 자기가 매일 닦는 표지판의 주인공들, 즉 예술가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날부터 청소부는 음악회와 오페라 공연에도 가고 거실에 앉아 밤새 음악을 들으면서 점점 더 흥미를 느낀다. 또 도서관에 가서 작가들이 쓴 책들을 읽으며 깊은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예술가들에 관해 쓴 비평서까지 읽게 된다. 어느 날부터는 멜로디를 휘파람으로 불고 시를 읊조리며, 가곡을 부르고 읽은 소설을 다시 이야기하면서 청소를 한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것을 듣고는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추게 되고 마침내 텔레비전에 소개될 정도로 유명인사가 된다. 심지어는 네 군데 대학에서 강연을 요청해 오지만 곧 거절하는 답장을 쓴다. “나는 종일 표지판을 닦는 청소부입니다. 강연을 하는 건 오로지 내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랍니다. 나는 교수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행복한’ 세 편의 이야기. 이 이야기들은 각각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를 말해주는 것 같다. ‘한스’는 가볍고 후련한 몸과 마음에, ‘왕자님’은 나누고 베푸는 자비의 실천에, ‘청소부 아저씨’는 스스로 깨우쳐 나가는 자기실현의 과정에 있다고 한다. 마음이 개운할 때 행복하고, 애틋하게 사랑할 때 행복하며, 공부하고 성장할 때 행복하다고. 행복은 가뿐하고 따스하며 뿌듯하게 와닿는 것이니, 부디 마음을 잘 다스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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