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시꽃을 마주하며- 김창균 빛고을고등학교 교장
2023년 06월 14일(수) 00:00
초여름에 들어서니 접시꽃이 한창이다. 별다른 보살핌 없이도 스스로 씨앗을 뿌리고 이듬해 꽃을 피우는 일을 오랜 세월 이어와서인지, 아니면 붉은색, 하얀색, 분홍색 꽃의 수려함에 서린 수수함 때문인지 도심에서 마주해도 야생의 실박함이 물씬 풍긴다.

접시꽃은 적응력이 뛰어나고 재배가 무난하여 원산지인 중국 남서부 지역을 떠나 중동을 거쳐 유럽까지 건너갔다. 유럽 사람들은 접시꽃을 민가 울타리 안팎에서 주로 접했던 모양이다. 영국의 화가 찰스 헌트(Charles Hunt, 1803∼1877)가 그린 풍경에 강아지를 놀리려고 길섶의 나무울과 나란히 한 접시꽃 뒤에 숨은 아이들이 있으니 말이다.

우리나라에도 삼국시대에 촉규화(蜀葵花: 촉나라 아욱꽃)라는 이름으로 들어왔다. 토양을 가리지 않고 햇빛을 좋아하지만 약간의 그늘도 수락하는 무난한 생육 조건 탓인지 비슷한 시기에 들어와 왕실과 귀족에게 사랑받은 국화와 달리 인가 주변에 자리 잡았다.

신라 말에 고운(孤雲) 최치원이 쓴 시를 보면 그 당시의 접시꽃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다. 선생은 밭둑에 탐스럽게 피었지만 벌, 나비 외에는 찾는 이가 없는 촉규화에 자신의 처지를 투영하여, 알아주는 이 없고 세상에 쓰이지 못하던 당나라 유학 시절을 “천한 땅에 태어난 것 스스로 부끄러워 사람들에게 버림받아도 참고 견디네”라고 노래하였다.

어느덧 국내 체류 외국인 230만 명 시대가 되었다. 여기에 결혼이민자 자녀, 귀화자 등을 포함하면 이민 배경 인구는 300만 명을 훌쩍 넘는다고 한다. 한편 글로벌화된 세계는 문화의 경계를 허무는 반면 문화적 차이를 넘어서서 차별을 더욱 뚜렷하게 드러내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를 대표하는 것이 요즘 유튜브 영상 중 ‘니하오 대처법’이 아닌가 한다. 유럽인들이 한국인에게 ‘니하오’를 외치는 모습을 접한 경험담이 올라오고, 여기서 눈을 찢는 동작 같은 비언어적 차별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보니 많게는 수백만 회의 조회 수를 기록하는 영상도 있다.

물론 ‘니하오’도 ‘하이(Hi)’처럼 인사말이고, 아시아인은 중국인이 대부분이라 현지인들이 아는 중국어로 인사하는 것일 뿐이라는 반론도 있다. 이와 관련하여 KBS 취재진이 독일 사회통합이주연구센터(DeZIM)에 문의한 결과, 답변은 ‘인종 차별로 볼 수 있다’였다. 노상에서 뜬금없이 ‘니하오’를 외치는 것은 상대가 표준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보여 주려는 의도가 될 수 있다는 것, 즉 상대편이 자신과 다른 사람임을 말로 보여 주는 ‘먼지 차별’(Microaggression: 크게 의도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발생하는 미묘한 차별)이라는 것이다.

엊그제 호남지방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21년 11월 기준 다문화 아동 인구 비율은 전남 6.8%, 전북 5.7%, 광주 3.3%였다. 전남과 전북은 전국 1, 2위를 기록하였다. 귀화자든 외국인 신분이든 이민자 가정이든 차별 없는 사회·경제·문화적 권리가 필요한 이들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월트 휘트먼의 시 ‘배를 타고 항해했으면’(O to Sail in a Ship!)의 내용처럼 고운 선생은 육지를 떠나 바다를 달리고 싶었고, 당나라에서 접시꽃 처지를 이겨냈다. 그런데 돌아온 고국은 혈통에 따라 신분을 가르는 골품제의 폐단 속에 여전히 갇혀 있었다. 지금 우리 주변은 어떠할까.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외국인 근로자, 결혼이민자, 유학생부터 전쟁의 아픔을 안고 온 이들까지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이들은 어떤 환경에 놓여 있을까.

뻐꾸기 울음소리와 더불어 시작한 접시꽃은 장맛비에 젖어가면서도, 땡볕 아래에서도 환하게 꽃을 피우며 어른 키만큼 자라날 것이다. 고운 선생의 접시꽃은 황량한 밭둑에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가장 아름답게 여름을 함께해 주는 꽃이 되었다. 그래서 접시꽃을 덕두화(德頭花)라 부르듯이, 우리도 형형의 색상이 품고 있는 덕(德)을 알아 나눔과 베풂으로 승화해야 한다. ‘니하오’를 외치는 서구에 대응하는 마음이 정작 안에서는 다름을 틀림으로 간주하는 구태의연한 편견과 차별에 갇혀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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