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향기] 개미 불개미, 잔등 부러진 불개미가- 박용수 수필가·동신여고 교사
2023년 06월 12일(월) 00:00
“개미 불개미 잔등 부러진 불개미가 /앞발에 정종 나고 뒷발에 종기 난 불개미가 광릉 심재 너머 들어 가람의 허리를 가로 물어 추켜들고 북해를 건너갔단 말이 있습니다. /님아 님아, 온 놈이 온 말을 하여도 님이 짐작하소셔.”

술자리가 끝날 즈음, 뒤늦게 도착한 녀석이 내 손을 덥석 잡는다. 그러곤 “친구, 우리가 어떤 사인가?” 하며 포옹을 해 왔다.

녀석과 헤어져 돌아오는데 이 시조가 절로 떠올랐다. 저절로 나오는 글은 암기될 정도로 좋아했다는 말이다. 읽다가 절로 탄성을 지르며 무릎을 쳤던 기억이 난다. 과장된 측면도 없지 않지만 기발한 발상과 알레고리, 통렬한 풍자가 가슴을 뻥 뚫어 준다. 탈춤이나 꼭두각시놀이 따위의 신명은 저리 가라이다.

그 친구는 2년 전에도 똑같이 내 손을 잡고 같은 말을 했었다. 그는 그때 내게 빌린 적조차 없다는 듯 시치미를 떼고서 같은 방법으로 또 부탁을 해 왔다. 첫 번째 빚을 갚고 나서 말하자는 내 말에는 대꾸도 없이 배짱도 커졌는지 액수도 많아졌다.

오늘날에도 한 줄 시, 두 줄 시로도 생명력을 잇고 있는 시조의 맛과 멋은 무엇보다 해학과 풍자이다. 그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 돌아서면서 옛 선인들의 능청스러움과 날카로움을 배운다.

요즘 세상 역시 한시도 조용할 날이 없다. 세상은 온통 돈, 이념, 종교, 경제, 환경 문제 등으로 진흙탕이고 전쟁 중이다. 이런 문제들은 대체로 정치권에서 재집권하기 위하거나 집권을 목적으로 인위적으로 과장하거나 조작해서 자기편을 만들 목적일 경우가 많다.

돈도 그렇지만 이런 이념은 부모 형제도 갈라서게 만든다. 하지만 사람이 만들어낸 허상이나 관점과 견해 차이에 불과한 것을 자기 생각만 진리이고, 타인의 견해는 프레임을 씌워 비난하기 급급하다 보니 논리에 앞서 싸우기 바쁘다. 거기에 섬뜩한 직설과 독설 앞에 인간과 사랑이 끼어들 겨를이 없다. 그래서 능청스러운 알레고리, 재치 있는 해학과 날카로운 풍자가 더 그립다.

예전 당쟁 못지않게 진보와 보수가 한 치 양보 없이 대결하고 있는 오늘날, 여전히 가짜가 판을 치고, 물가는 나날이 오르는 등 올곧게 살아가고자 몸부림치는 서민들의 삶은 참으로 눈물겹고 참혹하다.

“밝가버슨 아해들이 거ㅁㅢ줄 테를 들고 개천으로 왕래하며 /밝가숭아 밝가숭아 져리가면 죽나니라 이리오면 사나니라. 부로나니 밝가숭이로다. /아마도 세상일이 다 이러한가 하노라.”

글은 시대의 산물이다. 백성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지고 척박해지는데, 위정자들은 자신만 살겠다고 밤낮 싸움질만 하는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백성의 영혼은 여전히 공허하고 빈곤하다. 정치인들은 상대를 어떻게 참소할 수 없을까 안달이고, 종교인은 광고를 통해 신도를 끌어모으고 자기 편이 아니면 이단이라고 비방하기 바쁘다. 정치나 종교에서 서민들은 상품이고 거래 대상일 뿐이다.

간디의 말이 떠오른다. 희생 없는 신앙, 노동 없는 부, 인간성 없는 과학, 원칙 없는 정치, 양심 없는 쾌락, 도덕성 없는 상업, 인격 없는 지식. 일곱 가지 사회악, 지금 우리 사회를 통찰하고 있는 듯 가슴이 뜨끔해진다.

세상이 봄눈처럼 따뜻했으면 좋겠다. 살면서 늘 행복했던 때는 싸울 때보다 협력하고 서로 정을 나눌 때이다. 간혹 전쟁을 벌여 참혹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늘 서로 협상하고 사랑하는 길을 택해 왔다. 그것이 바로 인간애다. 남을 모함하는 말이나 달콤하게 유혹하는 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 사는 세상에 없어지지 않을 것 같다. 이에 현혹되지 않고 중심을 잡고 살기 또한 여간 쉽지 않은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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