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의 ‘우리지역 우리식물’] 암태도에서 만난 순비기나무
2023년 06월 08일(목) 00:00 가가
7년 전 국내 식물 연구기관으로부터 한국의 자생 약용식물을 그려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나는 4년간 우리나라 자생 약용식물 80여 종을 직접 관찰해 그림으로 기록했다. 식물 중에는 갯기름나물, 갯방풍, 갯완두 등 ‘갯’이 들어가는 이름이 많았고, 이들을 관찰하기 위해 나는 산이 아닌 바닷가를 오갔다.
내가 식물을 보러 가는 곳은 주로 산과 식물원이지만 때때로 해안 사구와 갯벌, 섬으로 향하기도 한다. 바닷가에도 식물은 살기 때문이다. 물론 바닷가라고 산보다 결코 수월하지만은 않다. 바닷가로 향할 때마다 나는 만반의 준비를 한다. 모자와 여벌 옷도 챙기고, 발등 높이 올라오는 신발도 신는다. 바닷가에는 바람이 많이 불고 햇빛도 강하며 모래 틈에 발이 쑥쑥 빠지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 사는 식물은 산에 사는 식물과 형태도 크게 다르다.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강한 바람에 쓰러지지 않기 위해 작은 키에 누워 자라며, 염분이 잎에 스며들지 않고, 뜨거운 태양에 견딜 수 있는 매끈하고 두꺼운 잎을 갖고 있다. 입자 틈이 넓은 모래 땅에서 수분, 양분을 흡수하기 위해 땅 깊숙이 뿌리를 내리는 요령도 지녔다. 다시 말해 바닷가란 우리 주변 식물이 살기에는 척박한 환경이며, 그런 땅에서 사는 식물에게는 산과 화단에 사는 식물에게는 없는 비범함이 있다. 그 비범한 능력 중 하나는 염분에 대한 적응력이다.
토양의 염분, 다시 말해 소금기는 식물에게 스트레스를 주어 식물 성장에 악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일부 식물은 염분 스트레스에 견디는 내염성이 있어 일반 식물은 결코 살 수 없는 염류 토양에서 살아갈 수 있다. 이들을 염생식물이라 한다. 학자마다 의견이 다르긴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60~100여 종의 염생식물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며, 대부분 서남해안에 분포한다.
염생식물은 염분에 저항하기를 넘어, 염분을 에너지로 활용하고 체내 기관에 저장하기도 한다. 약용식물로 널리 알려진 퉁퉁마디는 두꺼운 잎과 줄기 안에 염분이 든 물을 저장해 둔다. 퉁퉁마디의 또 다른 이름은 한자 ‘짤 함’(鹹)의 함초다. 염분에 대한 저항성이 이 식물의 정체성인 셈이다.
바닷가에 사는 약용식물을 관찰하기 위해 찾은 암태도에서 보라색 꽃을 한창 만개한 염생식물, 순비기나무 군락을 만났다. 조금은 독특한 이들 이름은 제주도 방언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진다. 숨을 비우고 물에 들어가는 해녀들이 자주 겪는 잠수병에 효과적이라 숨비기나무, 순비기나무로 불리게 되었다고 추측한다.
이들은 자갈이 유난히 많은 모래 땅에서도 내 키만큼 크게 자란 데다 꽤 두꺼운 가지를 키워 냈다. 순비기나무가 모래, 자갈 심지어 바위가 있는 땅에서도 이렇게 군락을 이루어 생장할 수 있는 것은 뿌리가 옆으로 깊고 넓게 뻗어 입자가 큰 땅에 뿌리를 고정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암태도의 주민분이 말씀하시길 이들은 바닷물에 침수된 후에도 복원이 빠르다고 한다. 이토록 연한 보라색 꽃과 은색에 가까운 연녹색 잎의 소박한 나무가 바다와 땅의 공격에도 흔들림 없이 제 길을 지나왔음이 놀라웠다.
순비기나무 꽃을 보고 두어 달이 지나 암태도를 다시 찾았을 때, 이들 잎은 연주황색과 연보라색으로 단풍이 들었다. 낙엽이 아까울 만큼 아름다운 색상 팔레트였다. 바닷가에 사는 약용식물 기록을 마치고 나는 더 이상 암태도에 가지 않게 되었지만 종종 이들을 소재로 한 화장품이 나왔다거나 약용 효과가 연구되었다는 뉴스를 본다.
2050년 지구의 인구는 97억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 인구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식량 생산량이 현재보다 70% 이상 증가해야 한다고 한다. 반면 지구 온난화와 건조에 의해 2050년 기존 식량 경작지의 50% 이상이 염류화될 것으로 추정하는 연구 결과가 있다. 결국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도 염생식물에 대한 연구를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흐름에 맞춰 우리나라에서도 전북 김제시에 국립 새만금식물원을 조성 중이다. 앞으로 우리에겐 순비기나무와 그 밖의 우리나라 자생 염생식물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을까 싶다.
<식물 세밀화가>
바닷가에 사는 약용식물을 관찰하기 위해 찾은 암태도에서 보라색 꽃을 한창 만개한 염생식물, 순비기나무 군락을 만났다. 조금은 독특한 이들 이름은 제주도 방언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진다. 숨을 비우고 물에 들어가는 해녀들이 자주 겪는 잠수병에 효과적이라 숨비기나무, 순비기나무로 불리게 되었다고 추측한다.
이들은 자갈이 유난히 많은 모래 땅에서도 내 키만큼 크게 자란 데다 꽤 두꺼운 가지를 키워 냈다. 순비기나무가 모래, 자갈 심지어 바위가 있는 땅에서도 이렇게 군락을 이루어 생장할 수 있는 것은 뿌리가 옆으로 깊고 넓게 뻗어 입자가 큰 땅에 뿌리를 고정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암태도의 주민분이 말씀하시길 이들은 바닷물에 침수된 후에도 복원이 빠르다고 한다. 이토록 연한 보라색 꽃과 은색에 가까운 연녹색 잎의 소박한 나무가 바다와 땅의 공격에도 흔들림 없이 제 길을 지나왔음이 놀라웠다.
순비기나무 꽃을 보고 두어 달이 지나 암태도를 다시 찾았을 때, 이들 잎은 연주황색과 연보라색으로 단풍이 들었다. 낙엽이 아까울 만큼 아름다운 색상 팔레트였다. 바닷가에 사는 약용식물 기록을 마치고 나는 더 이상 암태도에 가지 않게 되었지만 종종 이들을 소재로 한 화장품이 나왔다거나 약용 효과가 연구되었다는 뉴스를 본다.
2050년 지구의 인구는 97억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 인구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식량 생산량이 현재보다 70% 이상 증가해야 한다고 한다. 반면 지구 온난화와 건조에 의해 2050년 기존 식량 경작지의 50% 이상이 염류화될 것으로 추정하는 연구 결과가 있다. 결국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도 염생식물에 대한 연구를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흐름에 맞춰 우리나라에서도 전북 김제시에 국립 새만금식물원을 조성 중이다. 앞으로 우리에겐 순비기나무와 그 밖의 우리나라 자생 염생식물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을까 싶다.
<식물 세밀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