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자 도시락’ - 박성천 여론매체부 부국장
2023년 03월 05일(일) 22:00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야외 나들이를 나가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휴일이면 문화 명소나 맛집을 찾아 교외로 빠져나가는 차들을 많이 보게 된다. 예전과 비교해 한 가지 달라진 게 있다면 도시락을 싸가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불과 십수 년 전만해도 가족들끼리 오순도순 앉아 맛있는 도시락을 먹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급식이 일반화되면서 초중고 학교에서도 도시락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예전에는 가방과 실내화 주머니, 도시락을 지참하는 건 기본이었다. 고등학교 시절만 해도 도시락 두 개는 기본이었고 어떤 학생들은 세 개까지 싸 온 경우도 있었다. 몰래 교문을 빠져나가 분식집에서 라면이나 떡볶이를 먹고 오는 학생들도 부지기수였다.

고물가 상황이지만 편의점 도시락이 한 끼 식사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얼마 전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하나 산 적이 있다. 가성비 좋고 푸짐한 ‘혜자스럽다’라는 신조어까지 낳은 ‘김혜자 도시락’이 눈에 띄었다. 2010년 출시돼 2017년까지 40여 종 상품이 판매될 만큼 인기를 끌었다는 표면상 이유보다 ‘혜자로운 집밥’이라는 문구에 눈길이 갔다.

‘혜자스럽다’는 신조어의 뜻만큼이나 도시락 가격은 저렴했다. 당초 4500원이지만 14일까지는 3900원에 판매된다는데 여기에는 ‘고물가 시대 결식아동이 급식 카드로 사먹을 수 있는 도시락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김혜자의 뜻이 반영됐다는 후문이다. 어떤 커뮤니티에는 “본인 로열티를 깎아 책정된 할인 기간”이라는 글이 올라오면서 가격 비밀이 알려지기도 했다.

김혜자는 가장 한국적인 배우이자 어머니를 표상하는 배우이다. 드라마 ‘전원일기’를 비롯해 수많은 작품에서 세대를 초월한 어머니의 모습을 연기했고, 빈곤 아동 구호 활동을 펼치는 등 봉사 활동에도 앞장섰다. 고전적인 도시락은 어머니의 마음과 손맛을 상징한다. 김혜자와 어머니, 집밥, 도시락, 손맛, 추억, 정이 하나로 연결되는 이유다. 학창시절 점심시간은 저마다 다른 반찬을 싸 온 덕분에 소박한 ‘만찬’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어머니의 도시락이 그리운 시절이다.

/ 박성천 여론매체부 부국장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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