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광주일보 신춘문예] 시 심사평
2023년 01월 02일(월) 18:20
“참신한 발상 안정적으로 끌어가는 솜씨 일품”
본심에 올라온 일곱 분의 작품에서 먼저 네 분의 작품을 가려 뽑았다. 김태춘의 시는 빛나는 문장이 있었다. “자고나면 아이들이 사라지는 거야/바보 같은 바나나가 범인이라니” 같은 구절은 낯설고 참신하다. 오후랑의 시는 참신한 발상을 끌어가는 솜씨가 일품이었으며 언어유희나 은유와 상징 사용에도 능했다.

이은정은 어떤 것이 시가 되는지는 알고 있다. 특히 ‘낙하’에서 화자의 불안한 심리를 “한꺼번에 실려 온 걸음 같아/난간에 부딪히는 발소리”로 표현한 대목이 좋았다. 김혜윰의 시는 특히 “수술실로 들어가는 사람의 마지막 손을 놓친 듯/나의 목소리는 끝까지 잠기고 있습니다” 같은 구절엔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이 중 두 사람으로 선택지를 줄이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은정은 어떤 발견과 인식이 자기만의 개성에 이르지 못했다. 반전이나 재해석 없는 나열은 독자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 김혜윰의 시는 이미지나 진술들이 파편화 되었다는 점이 약점이었고, 시상을 끝까지 전개해 가는 힘이 약했다.

김태춘은 시적인 문장을 구사할 줄 알았고, 시적 감수성이 좋았다. 다만 “대상 없는 저주가 술병에 쌓이고 우리는 불판 위에서 자폭 한다” 같은 문장은 독자가 공감하기 어려웠고, “먼지 자욱한 광고가 끌고 가는 늘어진 시간” 같은 경우에도 관념을 사물화 한 점은 좋았으나, ‘광고가 끌고’에서 ‘끌고’에 의문표를 붙일 수밖에 없었다. 자기 문장의 옥석을 가려 더 밀도 높은 시를 써낸다면, 빛나는 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오후랑의 ‘나방의 긍정’을 당선작으로 뽑는다. 어떤 작품을 뽑아도 좋을 만큼 수준이 골랐다는 점에 신뢰가 갔다. 특히 “조명발 좀 받아 보자고요 하룻밤쯤 멋진 이름으로 개명하고 싶어요” 같은 엉뚱해 보이는 진술이 시적 일관성 속에서 살아있다는 게 돋보였다.



이대흠 시인

▲창작과비평 등단

▲서울예전 문창과 졸업

▲조태일문학상 등 수상

▲시집 ‘코끼리가 쏟아진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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