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의식 속에 살아 숨 쉬는 사자성어-심명섭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도서관문화진흥원 순회사서
2022년 12월 21일(수) 01:00
쉼 없이 달려온 연말이 되면 여러 언론 매체들이 앞다투어 ‘올해의 사자성어(四字成語)’를 발표한다. 1년 동안의 현실 상황이나 정치적 공과를 종합하여 반영하는 데다 어떻게 한 해가 흘러갔는지 흐름을 대번에 알 수 있어 선정된 사자성어를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가끔은 일반 대중의 입장과 시각에서 볼 때 편파적이고 냉소적이어서 이해하기 힘든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선정 과정에 합리성과 보편적인 기준이 잣대가 된다. 덕분에 우리는 되새길수록 맛깔스러운 네 글자를 반추해 보고 생활의 교훈으로 삼을 수 있다.

혹자들은 묻는다. 사자성어는 옛 시대의 전유물이며 한자를 사용하는 세대가 갈수록 줄어들고 결국에는 사장될 수도 있는데 굳이 사자성어를 사용할 필요가 있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사자성어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지금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 이유는 사자성어가 어느 한 시대나 어떤 특정 분야만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풍부한 문헌들을 통해서 대부분은 그 근원과 뜻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기본적인 한자 해독 능력만 있으면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읽으면 읽을수록 깊고 넓은 의미가 담겨 있어 그 효용성도 정말 대단하다.

올해 정치권에서 많이 회자된 양두구육(羊頭狗肉)을 살펴보면, “겉은 훌륭해 보이나 속은 그렇지 못한 것으로 겉과 속이 서로 다르다는 뜻 즉,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근원은 ‘안자춘추’에 기록되어 있다. 제나라 영공은 마음에 든 궁중 여인들에게 남장을 시켜놓고 즐기는 괴이한 버릇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남장 여인 풍습은 궁중을 벗어나 민간에도 널리 퍼져 나라가 극도의 환란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자 영공은 궁 밖에서 여자들이 남장하는 것을 왕명으로 금지하였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그러다 어전회의에서 궁중에서는 남장한 여인을 허용하면서 민간에서는 금하는 것은 “식육점에 양의 머리를 걸어 놓고 개고기를 파는 것”과 같다는 신하들의 고언을 듣고서야 궁중은 물론 민간에까지 여자가 남장하는 것을 금하자 온 나라에 남장 여인이 없어졌다고 한다.

이처럼 사자성어는 생활에서 빈번하게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었거나 누구나 지닐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에 호소하여 대중의 공감 속에 회자되어 오는 것으로써 생명력을 지니는 말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옛날에 있었던 일이나 어떤 사건에 머무르지 않고 지금까지 시공간의 한계를 넘어 보편적이며 다양하게 활용되어 우리 생활에 중요한 기능과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 교수신문이 발표한 2022년의 사자성어는 ‘과이불개’(過而不改)다.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다” 는 뜻으로 “민생은 없고 당리당략에 빠져서 나라의 미래 발전보다 정쟁만 앞세우는” 현재의 여야 정치권의 행태를 지적했다. 아울러 “입법·행정 관계없이 리더의 본질은 잘못을 고치고 다시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솔선수범하는 자세와 마음을 비우는 자세에 있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이와 같이 사자성어를 이용하여 사회 현상의 부조리나 비리 또는 불협화음 양상을 비판적으로 표현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이 현상은 네 글자만으로도 하나의 충격적 사건에 대응하여 형성된 대중의 집중된 비판 의식과 공감대를 표출할 수 있다는 것과 더불어 사자성어가 대중에게 거부감 없이 친숙하게 다가설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작금의 상황에 대한 부연 설명 없이도 간결한 문구로 특유의 맛과 효과를 나타내는 사자성어는 지금도 우리의 정신세계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또한 길고 긴 역사를 통해 터득한 지혜의 결정체이며 불확실한 미래사를 점치게 하는 하나의 예언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자성어를 옛 시대의 유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자세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가끔씩 선조들의 슬기와 위트에 공감하는 시간을 가져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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