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가 주는 즐거움- 조오복 동화작가
2022년 12월 19일(월) 01:00 가가
얼마 전 가을의 끝자락, 도서관에 가는 길이었다. 시내버스에서 내려 걸어가는데, 길바닥에 노란 은행잎들이 수북이 떨어져 있었다. 문득 단짝 친구 동자가 생각났다. 옆에 있다면 함께 벌떡 누워 뒹굴면서 은행잎 싸움이라도 했을 텐데…. 혼자라도 그냥 거기 주저앉아서 은행잎 흩뿌리며 놀고 싶은 걸 꾹 참았다. 노란 융단처럼 깔린 은행잎들을 두발로 쓱쓱 밀면서 ‘너무 예쁘다, 너무 예쁘다’ 흥얼거리며 걸었다. 옆길에서 나온 아주머니한테 “은행잎이 너무 예쁘지요?” 물었더니 “아이고, 귀찮아서 쓰것소?” 냉정하게 대답하고 멀어졌다.
다 익은 은행 열매는 길바닥에 떨어져서 자동차 바퀴에 깔리고, 사람들이 밟으면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 환경공무관 아저씨들은 떨어져 쌓인 은행잎 치우느라 수고가 이만저만 아니다. 그렇지만 일 년도 아니고, 넉넉잡고 한 달 정도 우리가 참으면 안 될까? 지구의 주인이 우리 인간만이 아니기에 하는 말이다. 모든 식물, 동물, 광물도 함께 살아야 할 지구의 주인이잖은가? 만물의 영장이라고 사람들이 편할 대로 개발과 파괴를 마구잡이로 한 결과 환경이 무참히 바뀌어 버렸다. 지금도 곳곳에서 한창 바뀌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코로나19 같은 질병도 나타난 거라고 생각한다. 기후도 점점 온난화로 변하고 남극과 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리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곳에 사는 펭귄과 북극곰도 개체수가 셀 수 없이 줄었다고 한다. 지금 당장 탄소중립을 철저히 실천해야 하는 시급한 때이기도 하다. 냄새 좀 난다고, 낙엽이 귀찮다고, 어떤 곳의 은행나무는 베어 버리기도 한다니 너무 심하지 않나 싶다. 이른 봄이면 무지막지한 가지치기의 아픔도 잘 견디어 내고, 꿋꿋이 잘 사는 은행나무를 보면 삶의 강인한 생명력을 본받고 싶을 때도 있다.
샛노란 낙엽이 우리들에게 주는 눈부신 황홀함은 악취를 풍겨서 미안함에 대한 보상이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또한 열매와 잎은 사람들의 건강에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가로수로서 수많은 자동차의 매연과 먼지, 소음까지 다 받아먹으면서 한 여름 아스팔트의 열기도 식혀 주는 고마운 은행나무를 너무 푸대접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은행나무는 암수 나무가 마주보고 눈빛으로 사랑을 주고받아서 꽃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고 한다. 은행나무들만의 오묘한 생리 질서를 사람들이 잠깐 불편하다는 이유로 해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앞으로는 열매를 못 맺게 수은행나무만 골라서 가로수로 심을 거라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사람들이 부리는 이기적 욕심의 끝은 어디쯤일까?
며칠 전 친구들과 모이는 날이었다. 점심을 먹고 찻집으로 가면서 금남로를 걸었다. 은행나무 가로수가 눈에 가득 들어 왔다. 그중 몇몇 은행나무에 떨어지는 은행 열매를 받기 위해 둥그런 그물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물 밑 부분은 은행나무 몸통에 단단히 묶여있었고, 떨어진 열매가 마치 바다에서 고기가 그물에 걸린 것처럼 담겨 있는 것이다. 은행 열매 냄새가 한창 언론에 오르내릴 때, 어느 지방 도심 가로수에 설치해 놓은 사진을 봤는데, 바로 그것이었다.
가로수 담당하는 분들이 수고스럽겠지만 그물을 설치해 놓고, 열매가 떨어져 모아졌을 때 수거해서 처리하면 냄새 따윈 말끔히 해결될 것이다. 열매가 자동차 바퀴나 사람들의 발길에 밟히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설치된 그물이 반가워서 친구들한테 “저것, 참 잘해 놨다” 큰 소리로 말했더니, 지나가던 아저씨도 그물을 쳐다보며 나와 같은 생각인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반듯반듯한 건물들만 보이는 도로변에 은행나무를 암수 가리지 말고 함께 심어서 가을이면 탱글탱글 잘 영근 은행 열매를 오며 가며 쳐다보는 것도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일 것이다. 그게 나만의 고리타분한 바람일런지 모르겠다. 부디, 냄새 좀 나고, 낙엽 처리가 귀찮다고 은행나무들을 홀아비와 홀어미로 만들지 말았으면 좋겠다. 은행나무도 암수 나무가 서로 바라보며 열매 맺을 권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나무는 암수 나무가 마주보고 눈빛으로 사랑을 주고받아서 꽃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고 한다. 은행나무들만의 오묘한 생리 질서를 사람들이 잠깐 불편하다는 이유로 해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앞으로는 열매를 못 맺게 수은행나무만 골라서 가로수로 심을 거라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사람들이 부리는 이기적 욕심의 끝은 어디쯤일까?
며칠 전 친구들과 모이는 날이었다. 점심을 먹고 찻집으로 가면서 금남로를 걸었다. 은행나무 가로수가 눈에 가득 들어 왔다. 그중 몇몇 은행나무에 떨어지는 은행 열매를 받기 위해 둥그런 그물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물 밑 부분은 은행나무 몸통에 단단히 묶여있었고, 떨어진 열매가 마치 바다에서 고기가 그물에 걸린 것처럼 담겨 있는 것이다. 은행 열매 냄새가 한창 언론에 오르내릴 때, 어느 지방 도심 가로수에 설치해 놓은 사진을 봤는데, 바로 그것이었다.
가로수 담당하는 분들이 수고스럽겠지만 그물을 설치해 놓고, 열매가 떨어져 모아졌을 때 수거해서 처리하면 냄새 따윈 말끔히 해결될 것이다. 열매가 자동차 바퀴나 사람들의 발길에 밟히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설치된 그물이 반가워서 친구들한테 “저것, 참 잘해 놨다” 큰 소리로 말했더니, 지나가던 아저씨도 그물을 쳐다보며 나와 같은 생각인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반듯반듯한 건물들만 보이는 도로변에 은행나무를 암수 가리지 말고 함께 심어서 가을이면 탱글탱글 잘 영근 은행 열매를 오며 가며 쳐다보는 것도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일 것이다. 그게 나만의 고리타분한 바람일런지 모르겠다. 부디, 냄새 좀 나고, 낙엽 처리가 귀찮다고 은행나무들을 홀아비와 홀어미로 만들지 말았으면 좋겠다. 은행나무도 암수 나무가 서로 바라보며 열매 맺을 권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