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학생의 꿈- 박주정 광주 진남중 교장
2022년 12월 15일(목) 00:00
한 학생이 우리 학교로 전학을 왔다. 학기 중에 전학을 오는 경우는 이사를 하거나 무슨 사연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학교에서는 일단 전학을 오면 후자를 생각하고 걱정이 앞서는 것이 지금의 실정이다.

교직원 회의 때 선생님들께 부탁을 했다. 이왕 절차에 따라 전학을 온 학생에 대해서 선입견을 가지고 지난 일을 묻지 말고, 우리 학교에 온 날부터 따뜻하게 맞이해 주자고 당부했다. 전학생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과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 현실이지만 여러 사연을 가지고 피치 못해 전학 오는 학생을 서로 떠밀면 학생이나 학부모의 상처는 너무나 크다. 스스로의 잘잘못을 떠나 세상에 대한 원망만이 가득하다.

전학생이 오고 나서 며칠이 지난 뒤에 담임선생님께 물었더니 많은 보살핌과 학교생활 적응에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다고 걱정했다. 그래도 인성은 좋은 것 같다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겠다고 했다. 선생님의 따뜻한 정성이 고마웠다.

얼마 전에 그 학생을 교장실로 불렀다. 얼굴도 잘 생겼고 자유분방한 모습이었다. 요즘은 뭘 좋아하느냐고 물었더니 랩을 좋아한다고 했다. 공부는 어떠냐고 물었더니 초등학교 때에는 꽤 공부를 잘했는데 중학교에 올라와서 소홀히 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지나가는 말로 “여기서 랩 한 번 해 볼 수 있냐”고 물었더니 벌떡 일어나더니 “해 볼까요” 했다.

전학생은 교장실에서 30여 분 동안 거침없이 손을 흔들며 신들린 듯 랩을 했다. 나는 처음으로 가까이에서 실제 랩을 봤기 때문에 호기심, 당황, 웃음이 뒤엉켰다. 혼자 보기에 너무 아까워 행정실 선생님들과 지나가는 여학생들을 불러들였다. 여학생들도 함께 몸을 흔들며 즐겼고 전학생은 더욱 신이 나서 멋지게 노래를 불렀다.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여학생들에게 이 학생은 랩을 잘해서 우리 학교에 스카우트했다고 하니 순간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전학생도 기분이 ‘업’되는 순간이었다.

전학생에게 “누구를 제일 존경하고 좋아하냐”고 했더니 “조광일 래퍼”라고 말했다. 조광일이 누군지 몰라서 물었더니 랩의 황제라고 말하면서 한 번 만나는 것이 평생 소원이라고 했다. 궁금해서 ‘조광일’을 검색해 봤더니 공교롭게도 전에 내가 교장으로 근무했던 고등학교 졸업생이었다. 바로 그 학교 교감 선생님께 조광일 연락처를 묻자 조광일 아버지가 얼마 전 ‘쇼 미 더 머니 10’에서 전국 대상을 받아 교문에 플래카드를 걸어서 연락처가 있다는 것이었다.

조광일 아버지께 지금의 상황을 설명하고 통사정을 하였더니 다음날 우리 학교에 오셨다. 나는 이 학교 교장으로서 전학생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다고 했더니 광일이가 전북 어느 고등학교 축제에 온다고 하면서 같이 동행해 주겠다고 했다.

전학생을 태우고 축제장으로 달렸다. 전학생은 꿈에 그리던 조광일을 만난다고 하니 차 속에서 계속 랩을 불렀다. 조광일 아버지의 주선으로 조광일은 공연 전 상당한 시간을 전학생에게 할애하여 상담과 격려를 해 주었고, 사인과 기념 촬영까지 해 주었다. 조광일의 멋진 공연을 계속 따라서 하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났다. 광주로 돌아오는 차 속에서 전학생은 나에게 먼저 말을 꺼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진지하게 말했다.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그리고 랩을 열심히 해서 훌륭한 래퍼가 되어 다음에 교장 선생님을 공연장에 초청하겠으며, 지각 결석도 하지 않겠습니다.”

이 전학생은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 책상을 정리하고 공부할 준비를 했다고 학부모가 전화를 했다. 우리 집에, 우리 가정에 기적이 찾아왔다고 울먹였다. 전학생과 나는 쉽지 않겠지만 격랑과 폭풍우를 헤치며 함께 항해할 생각이다.

전학생을 지지하는 우리 학교 많은 선생님과 우리 둘의 변함없는 믿음이 지속된다면 조광일을 넘는 래퍼가 탄생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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