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노르웨이의 숲’이 주는 울림- 신우진 광주시민인문학 사무국장
2022년 12월 13일(화) 00:15 가가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는 그의 출세작이자 명작이다. 이 소설의 원제 ‘노르웨이의 숲’ 은 오늘의 젊은 세대들의 원색적인 욕망과 슬픈 상실의 갈등을 노래한 ‘비틀스’의 유명한 음악 ‘노르웨이의 숲’을 상징적으로 원용한 것이다.
젊은 날엔 누구나 울창한 숲속 한 그루 나무 같은 고독 속에서, 꿈과 사랑과 정든 사람들을 차례차례 잃어 가는 상실의 아픔을 겪기 마련이다. 소설은 17세에서 30대까지의 그 젊은 날의 감미롭고, 황홀하고, 애절한 슬픔에 찬 사랑의 이야기를 담은 세계적 베스트셀러로서,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이 작품이 30여 년간 한결같이 아무리 시대와 장소가 변해도, 변할 수 없는 상실과 재생을 위한 감동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키는 서두에서 “제가 여기서 그려내고 싶었던 것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그것이 이 소설의 간명한 테마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와 동시에 한 시대를 감싸고 있는 분위기라는 것도 그려 보고 싶었습니다. 사람을 진실로 사랑한다는 것은 자아의 무게에 맞서는 것인 동시에 외부 사회의 무게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은 참 가슴 아픈 일이지만, 누구나 그 싸움에서 살아남게 되는 건 아닙니다” 라고 말한다.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 꿈과 이념, 우정과 사랑… 젊은 시절 누구나 겪게 되는 환희와 상실 그리고 재생의 이야기로 진실한 사랑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소설이 애절한 감상으로 독자의 마음을 울리는 것은, 애인이 죽고 정든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져가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건 모든 애절하고 가슴을 저미는 추억이, 마치 꿈속에서 빚어진 일이었던 것처럼 슬프고, 감미롭고, 황홀한 사랑의 이야기로 승화되기 때문이다.
또한 하루키의 작품 세계는 하찮은 것들에 대한 깊은 애정과 섬세한 관심을 통해, 오늘날 젊은이들의 심리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통과의례처럼 표출하는 데 있다. 이 점이 곧 30여 년이 지나도록 젊은 독자들을 사로잡는 그의 마성적인 매력이 되고 있다.
‘상실의 시대’ 가 내 인생의 책이고 내 삶의 한 구절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삶에서 인상 깊었던 책 한 구절은 “죽음은 삶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다” 이다. 17세 그때의 나는 그것을 말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공기덩어리로서 몸 안쪽에서 느꼈다.
그때까지 나는 죽음이라는 것을 삶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독립적인 존재로 파악하고 있었다. 즉 죽음은 언젠가는 확실히 우리를 자신의 손아귀에 쥐게 된다. 그러나 거꾸로 말하면 죽음이 우리를 사로잡는 그날까지 우리는 죽음에 붙잡히는 일이 없는 것이다, 라는 생각이었다. 그것은 나에겐 지극히 당연하고 논리적인 명제로 생각되었다. 삶은 이쪽에 있으며, 죽음은 저쪽에 있다. 나는 이쪽에 있고 저쪽에는 없다.
그러나 나로선 이제 더 이상 그런 식으로 죽음을 그리고 삶을 단순하게 파악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죽음은 삶의 반대편에 있는 존재 따위가 아니다. 죽음은 나라는 존재 속에 본질적으로 이미 포함되어 있는 것이며, 그 사실은 아무리 노력해도 잊어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삶의 한복판에서 모든 것이 죽음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17세에 우연히 이 소설을 처음 접하고 다음 장이 너무 궁금하여 단숨에 밤을 새우며 읽었던 강렬한 기억이 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느꼈던 먹먹함과 기묘한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 시니컬하면서도 따스한 문체가 일품이었고 세련된 터치와 가벼움의 미학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죽음이라는 주제가 신선하게 다가왔고, 살아가고 있는 동시에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 반대로 죽어가고 있지만 동시에 살아가고 있다는 변증법적 깨달음을 주었다. 무엇보다 삶에 관하여 진지하고 실존적인 성찰을 하게 하고 인생에 대한 태도나 가치관 또는 세계관에 영향을 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에 대한 의문과 고민을 하게 했다. 어쩌면 진정하고 철저한 자유인의 삶을 가능하게 했는지 모른다.
또한 하루키의 작품 세계는 하찮은 것들에 대한 깊은 애정과 섬세한 관심을 통해, 오늘날 젊은이들의 심리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통과의례처럼 표출하는 데 있다. 이 점이 곧 30여 년이 지나도록 젊은 독자들을 사로잡는 그의 마성적인 매력이 되고 있다.
‘상실의 시대’ 가 내 인생의 책이고 내 삶의 한 구절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삶에서 인상 깊었던 책 한 구절은 “죽음은 삶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다” 이다. 17세 그때의 나는 그것을 말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공기덩어리로서 몸 안쪽에서 느꼈다.
그때까지 나는 죽음이라는 것을 삶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독립적인 존재로 파악하고 있었다. 즉 죽음은 언젠가는 확실히 우리를 자신의 손아귀에 쥐게 된다. 그러나 거꾸로 말하면 죽음이 우리를 사로잡는 그날까지 우리는 죽음에 붙잡히는 일이 없는 것이다, 라는 생각이었다. 그것은 나에겐 지극히 당연하고 논리적인 명제로 생각되었다. 삶은 이쪽에 있으며, 죽음은 저쪽에 있다. 나는 이쪽에 있고 저쪽에는 없다.
그러나 나로선 이제 더 이상 그런 식으로 죽음을 그리고 삶을 단순하게 파악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죽음은 삶의 반대편에 있는 존재 따위가 아니다. 죽음은 나라는 존재 속에 본질적으로 이미 포함되어 있는 것이며, 그 사실은 아무리 노력해도 잊어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삶의 한복판에서 모든 것이 죽음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17세에 우연히 이 소설을 처음 접하고 다음 장이 너무 궁금하여 단숨에 밤을 새우며 읽었던 강렬한 기억이 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느꼈던 먹먹함과 기묘한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 시니컬하면서도 따스한 문체가 일품이었고 세련된 터치와 가벼움의 미학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죽음이라는 주제가 신선하게 다가왔고, 살아가고 있는 동시에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 반대로 죽어가고 있지만 동시에 살아가고 있다는 변증법적 깨달음을 주었다. 무엇보다 삶에 관하여 진지하고 실존적인 성찰을 하게 하고 인생에 대한 태도나 가치관 또는 세계관에 영향을 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에 대한 의문과 고민을 하게 했다. 어쩌면 진정하고 철저한 자유인의 삶을 가능하게 했는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