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탓이오’-채희종 정치담당 편집국장
2022년 12월 09일(금) 01:00 가가
10대 시절 어른들의 손에 이끌려 성당에 다닐 때, 미사 중에 가슴을 세 번 치면서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라고 외며, 고백의 기도를 했던 기억이 있다. 현재는 이 기도문이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이옵니다”라고 바뀌었다고 들었다. 이 기도는 자신의 죄를 하느님께 고하고 사함을 받고자 함이다. 하지만 매주 이 기도문을 암송하는 천주교 신자들은 무의식 중에 잘못을 저지르거나 일이 잘못됐을 때, 실패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는 습관이 생기기도 한다.
천주교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는 지난 1989년 사회 정신 개혁운동으로 ‘내 탓이오’ 캠페인을 전개했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은 앞장서 이 캠페인에 전력을 다했으며, 승용차 뒤 유리에 ‘내 탓이오’라고 쓰인 스티커를 직접 붙이고 다녔다. 이 스티커 30만 장은 순식간에 배포됐다고 한다.
1987년 6·10 민주화운동으로 사회가 어느 정도 성숙했음에도 정치와 모든 분야에서 갈등·대립이 극에 달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 캠페인으로 국민적인 공감대를 얻었다. 특히 정치권은 민주화운동 이후 봇물처럼 터진 국민들의 개혁 열망을 무시한 채 사회 통합 대신 상대 진영을 헐뜯으며 권력 다툼에만 몰두했고, 이런 정치 풍토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옮아 사회 갈등을 부채질했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내 탓이오’라는 대중가요가 나왔고, ‘내 탓이오’를 주제로 한 시·수필·동화 공모전까지 열렸을까.
이미 25년이 지난 얘기인데, 어쩜 그리도 지금 상황과 하나도 다르지 않을까. 지난 10월 29일 이태원 참사로 국민 158명 숨지고, 197명이 부상을 입었다. 세월호 참사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서 수많은 국민들이 깔려 숨지는 순간을 모두가 손 놓고 당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참사 발생 40일이 됐지만 아직도 ‘내 탓’이라며 책임지는 사람이 한명도 없다. 국민은 누구의 잘못인지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 모두가 아는데, 정부는 수사를 해서 책임을 묻겠다고 한다. 국민이 안전을 책임지라고 모든 권한을 정부에 위임했음을 자각한다면,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명확한 것이다.
/채희종 정치담당 편집국장 chae@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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