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경쟁-윤현석 정치부 부국장
2022년 12월 08일(목) 00:45
중세 유럽은 전쟁의 역사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476년부터 게르만, 반달, 서고트, 동고트 등 이민족들이 국가를 세웠고 이후 약 1000년간 경쟁 체제에 들어갔다. 각국이 영토를 넓히고 부를 쌓는 것에 모든 역량을 쏟으면서 쉼 없는 전투가 반복됐다. 십자군 전쟁, 100년 전쟁 등 ‘비상식적인’ 전쟁으로 피해가 엄청났다. 하지만 법·제도·과학기술·문화예술·의학 등에서는 비약적인 발전을 낳았다. 서유럽의 발전은 서로마의 멸망에서 시작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동양 사상의 근간인 제자백가가 탄생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2800년 전 시작된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였다. 공자·노자·장자·맹자 등 200여 명의 사상가가 나타났는데, 그들의 가르침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고 강력하다. 춘추시대 수백 개에 이르는 작은 나라들이 그 근거지가 됐는데, 사상가들은 경계를 넘나들며 서로의 생각과 논리를 주고받고, 가다듬을 수 있었다. 이 시기 사상만이 아니라 거의 전 분야의 비약적인 성장은 이후 중국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

우리나라는 고조선 이후 여러 개의 작은 나라로 나뉘었다가 삼국시대, 통일신라·발해를 지나 고려, 조선 등 하나의 왕조로 약 1000년 간 지속돼 왔다. 왕이 파견한 중앙 관리가 각 지역을 통치했는데, 이들의 눈은 오로지 왕이 있는 한양만을 향하고 중앙 관직만을 바랐다. 지역 간 경쟁이 없는 중앙집권체제였다. 이후 일제가 대륙 침략과 강제 착취·수탈을 위해 조선을 병합한 뒤 국토 전반을 그들의 목표 달성에 맞춰 재편했다. 더 강한 권력의 힘으로 서울, 부산 등 일부 도시에 국가 재정을 집중했다.

1960년대부터 60여 년간 일제강점기의 시스템 위에 ‘국가 재정의 효율적인 투자’ ‘신속한 성장’이라는 기조가 더해졌다. 이는 인구·자본의 수도권 집중과 국가 기반시설의 편중 설치, 지역 간 불균형 심화 등의 부작용을 낳았고, 결국 국가의 지속 가능성마저 위협받고 있다. 현 시점에서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지역 간 공정한 경쟁은 불가능하다. 쇠락한 지역에 대한 범국가적인 지원, 지방자치·분권을 위한 법·제도적인 정비, 지역 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자구 노력 등이 무엇보다 시급해 보인다.

/윤현석 정치부 부국장 chadol@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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