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일 아트- 강향림 수필가
2022년 11월 11일(금) 01:00 가가
봉숭아 물들이기는 나의 연중행사다. 어쩌면 중독이리라. 달갑지 않은 여름이 기다려지는 건 봉숭아가 반가워서다. 다른 사람들은 꽃을 기다리지만 나는 줄기에 달린 이파리를 좇는다. 무더운 여름을 좋은 기억으로 머물게 하는 건 봉숭아의 힘이다. 기다림이 감탄으로 옮겨가는 식물이다.
나는 손발톱을 물들일 때 봉숭아꽃 이파리를 넣지 않는다. 파란 이파리만 쓴다. 꽃잎을 넣지 않은 이파리들을 짓이겨 손발톱에 매달아 묶는다. 나의 식물을 보듬는 자아와 파괴하는 자아가 함께 작동한다. 봉숭아는 아름다움을 얻으려 키우는 나의 페르소나다.
봉숭아 줄기에 달린 잎을 딸 때 가슴이 설렌다. 따온 이파리는 한 차례 선별을 거친다. 아파트에서는 층간 소음 때문에 절구를 이용해 조심히 찧는다. 밤이 아닌 경우라면 아파트 놀이터나 라인 현관 앞으로 나가 찧는다. 절구보다는 돌바닥에 돌로 꼼꼼하게 짓이기는 게 물이 더 잘 든다.
팩이 흔하지 않던 시절에는 검은 비닐종이를 잘라 실로 손가락을 동여맸다. 실의 압박으로 인해 욱신거리는 통증이 얼마나 컸던지. 요즘은 일회용 팩을 낙낙하게 잘라 둔다. 예전엔 손톱 옆 살갗에도 물들까 봐 크림이나 투명 매니큐어를 손톱 가장자리에 미리 발랐다. 하지만 살에 물이 들어도 일주일쯤 지나면 제 색으로 돌아온다는 걸 알고는 바르지 않는다.
처음 한 손의 다섯 손가락을 묶는 거는 쉽다. 매듭 묶은 손으로 반대쪽 손가락을 감싸는 작업은 만만치 않다. 입과 손을 이용해 매듭을 마무리 짓는 내 모습에 내가 실소한다. 봉숭아 물들이기는 녹록지 않다. 찌릿한 손가락 통증을 견디며 하룻밤 단잠을 포기하는 시간을 묵묵히 견뎌야 한다. 이어 따르는 손톱의 미학을 기대하지 않는다면 고통이다.
문방구에서 파는 인스턴트 봉숭아 물을 산 적이 있다. 길어야 30분이면 진하게 물들여진다는 홍보 문구에 혹했다. 짙은 주황색 가루에 적당량 물을 넣어 저어 주면 완성이다. 식물 잎이나 꽃이 가진 질감의 형체라곤 없는 똥물 같은 액체를 손톱에 올려 놓으면 굳는다. 뭔가를 준비해야 하는 절차도 생략이다. 밤새 뛰는 손가락의 맥박을 느끼며 아침을 기다리는 아릿함도 모르쇠다. 배려하고 준비하는 시간이 없는 문방구표 봉숭아 물은 언뜻 보기엔 천연 봉숭아 물보다 우월하다.
그러나 물들인 후 시간이 흐르면서 차이가 또렷하게 드러난다. 문방구표는 물 빠지는 속도가 빠르다. 색깔은 흐려지고 김치 물에 손을 담근 빛깔로 변한다. 천연 봉숭아 물은 시간이 갈수록 선명해지고 손톱 끝으로 조금씩 밀려 가는 모양새도 단정하다. 시간을 들여 정성 쏟는 데에 뚜렷한 격을 선사한다. 얍삽한 수로 단시간에 호들갑 떠는 일회용과는 품격이 다르다.
나는 엄지손가락이 뭉툭해서 엄지 공주라는 별명을 가졌다. 매니큐어를 칠하면 도드라져 더 못나 보이는 엄지 때문에 네일 아트도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런 내 엄지손가락을 천연 봉숭아 물은 멋지게 변신시켜 버린다. 매니큐어를 바르면 손톱이 답답하고 지울 때 아프다. 천연은 보기도 좋지만 손톱이 숨을 쉬니 일석이조다.
봉숭아 물은 엄지 공주의 변신에 오브제로 작용한다. 또 내 무의식의 상흔을 치유한다. 봉숭아 줄기의 작은 새싹에 물과 햇빛과 바람을 담은 기운이 실린 탓이다. 내가 봉숭아 물이 빠지자마자 다시 손톱에 새기려는 이유다.
봉숭아꽃이 지고 초록 씨방이 노랗게 익어 간다. 씨방의 가녀린 자태는 자극하지 말라는 메시지인가. 그 강한 거부에 내가 도전한다. 엄지와 검지로 씨방을 살짝 건드린다. 산포되어 날아간 갈색의 씨들 사이에 미소가 번진다. 나는 봉숭아 잎을 짓이겨 입술에 올려 둔다. 풋내에 입속 가득 쌉쌀한 맛이 퍼진다. 즙이 혈관을 타고 돈다. 시나브로 스며든 주황색이 심장으로 흐른다. 영혼이 된다.
봉숭아 줄기에 달린 잎을 딸 때 가슴이 설렌다. 따온 이파리는 한 차례 선별을 거친다. 아파트에서는 층간 소음 때문에 절구를 이용해 조심히 찧는다. 밤이 아닌 경우라면 아파트 놀이터나 라인 현관 앞으로 나가 찧는다. 절구보다는 돌바닥에 돌로 꼼꼼하게 짓이기는 게 물이 더 잘 든다.
문방구에서 파는 인스턴트 봉숭아 물을 산 적이 있다. 길어야 30분이면 진하게 물들여진다는 홍보 문구에 혹했다. 짙은 주황색 가루에 적당량 물을 넣어 저어 주면 완성이다. 식물 잎이나 꽃이 가진 질감의 형체라곤 없는 똥물 같은 액체를 손톱에 올려 놓으면 굳는다. 뭔가를 준비해야 하는 절차도 생략이다. 밤새 뛰는 손가락의 맥박을 느끼며 아침을 기다리는 아릿함도 모르쇠다. 배려하고 준비하는 시간이 없는 문방구표 봉숭아 물은 언뜻 보기엔 천연 봉숭아 물보다 우월하다.
그러나 물들인 후 시간이 흐르면서 차이가 또렷하게 드러난다. 문방구표는 물 빠지는 속도가 빠르다. 색깔은 흐려지고 김치 물에 손을 담근 빛깔로 변한다. 천연 봉숭아 물은 시간이 갈수록 선명해지고 손톱 끝으로 조금씩 밀려 가는 모양새도 단정하다. 시간을 들여 정성 쏟는 데에 뚜렷한 격을 선사한다. 얍삽한 수로 단시간에 호들갑 떠는 일회용과는 품격이 다르다.
나는 엄지손가락이 뭉툭해서 엄지 공주라는 별명을 가졌다. 매니큐어를 칠하면 도드라져 더 못나 보이는 엄지 때문에 네일 아트도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런 내 엄지손가락을 천연 봉숭아 물은 멋지게 변신시켜 버린다. 매니큐어를 바르면 손톱이 답답하고 지울 때 아프다. 천연은 보기도 좋지만 손톱이 숨을 쉬니 일석이조다.
봉숭아 물은 엄지 공주의 변신에 오브제로 작용한다. 또 내 무의식의 상흔을 치유한다. 봉숭아 줄기의 작은 새싹에 물과 햇빛과 바람을 담은 기운이 실린 탓이다. 내가 봉숭아 물이 빠지자마자 다시 손톱에 새기려는 이유다.
봉숭아꽃이 지고 초록 씨방이 노랗게 익어 간다. 씨방의 가녀린 자태는 자극하지 말라는 메시지인가. 그 강한 거부에 내가 도전한다. 엄지와 검지로 씨방을 살짝 건드린다. 산포되어 날아간 갈색의 씨들 사이에 미소가 번진다. 나는 봉숭아 잎을 짓이겨 입술에 올려 둔다. 풋내에 입속 가득 쌉쌀한 맛이 퍼진다. 즙이 혈관을 타고 돈다. 시나브로 스며든 주황색이 심장으로 흐른다. 영혼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