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할 때 피해야 할 다섯 가지- 박진영 공감커뮤니케이션연구소 대표, 전남대 객원 교수
2022년 11월 09일(수) 00:15
사과는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비는 일이다. 잘못을 반성할 뿐 아니라, 책임을 인정하고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행위다. 그러므로 사과는 먼저 피해자의 고통에 진심으로 공감해야 진정성을 가질 수 있다. 사과에 그러한 공감의 흔적이 없다면 이는 제대로 된 사과라고 볼 수 없다. 다음은 사과할 때 피해야 하는 말들이다.

첫째,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지난 8월 한 웹툰 작가가 팬 사인회를 하면서 행사 일정의 지연을 사과하는 과정에 “심심한 사과 말씀드립니다”라고 표현한 것이 화제가 됐다. 일부 독자들은 ‘심심’을 지루하다는 뜻으로 오해하면서 논란이 됐고, 젊은층의 문해력 논란으로 확대됐다. ‘심심한 사과’는 매우 깊게 사과 드린다는 뜻이다. 그러나 일상에서는 잘 쓰지 않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말로 사과를 해서는 진정성이 드러나기 어렵다. 말을 하는 이유는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다. 사과도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해서 해야 한다.

둘째, “제 말이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사과드립니다.” 사과하는 사람들의 말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표현이다. ‘OO했다면 사과한다’ 이렇게 조건을 붙이는 사과는 잘못된 사과다. ‘상하게 했다면’을 붙이는 것은 ‘내가 한 말이 그렇게 기분 상할 말도 아닌데 당신은 속이 좁다’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사과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도 상대가 불편해하지 않았다면 죄송하지 않았을텐데 불편하다고 하니 사과한다는 뜻이 된다. “제 말이 오해를 일으키게 했다면 사과드립니다.” 이 표현도 적절하지 않다. 내 말의 진의는 다르다는 변명의 성격이 짙은 사과다. 자칫 내 말을 오해한 상대에게도 잘못이 있다는 말로 들릴 수도 있는 표현이다. “제 말이 적절하지 않았습니다. 사과드립니다”라고 해야 한다. 사과는 이런저런 조건을 붙이지 않고 해야 한다.

셋째,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유감은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을 뜻한다. 우리가 평소에 “난 너에게 유감없다”고 얘기할 때를 떠올리면 ‘유감’이란 뜻이 더욱 명확해진다. 그래서 유감은 사과의 뜻을 담기보다는 섭섭하다는 뜻이 훨씬 짙다. 사과하고 싶지 않은데 사과해야 할 상황에서 유감이란 말을 사용하는 것이 제대로 된 사과일 리 없다.

넷째,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사과는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다. 이유를 막론하다는 의미는 ‘내가 그럴 수밖에 없는 나름의 이유가 있지만 굳이 비굴하게 표현은 않겠다. 그래서 잘못을 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통 크게 사과하는 것’이다. “저희의 의도와 무관하게 시민들의 오해를 사게 돼 죄송하다”는 표현도 시민들이 오해했다는 어감을 풍기는 내용이다. 사과의 표현이 모호해지는 것은 자신의 체면에 연연하고 자신의 잘못을 감추고 싶다는 마음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런 모호한 사과는 변명에 더 가깝다. 사과는 잘못에 대해서 뉘우친다는 진심이 있어야 하고 그것이 없다면 변명이다. ‘본의 아니게’ ‘그럴 뜻은 없었지만’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이란 표현도 마찬가지다.

다섯째, 사과는 깨끗하게 해야 한다. ‘하지만’으로 시작하는 문장을 붙이는 것은 변명이다. “미안해. 하지만 네가 오해하게 만들었잖아.” 이런 사과는 사과라고 할 수 없다. 변명이고, 도리어 상대를 비난하는 것이다. 사과만 하고,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제대로 사과하지 못한 것이 될 수도 있다. 상대방의 아픈 감정을 위로하는 가장 큰 힘이 되는 말은 ‘미안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란 말이다.

사과는 자신의 잘못을 인식했다면 최대한 빨리 해야 한다. 10·29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사흘 만에 사과의 말을 했다. 이 장관은 ‘경찰을 미리 배치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는 자신의 발언에 대해서 “국민들께서 염려하실 수도 있는 발언을 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사과라는 말을 쓰지 않고 ‘유감’이라고 표현했다. 또 참사에 대해 “주무 부처 장관으로서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뒤늦은데다, 진정성을 흐리는, 적절치 못한 표현을 담은 사과의 말이 희생자 가족과 국민을 더욱 슬프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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