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는 약, 살리는 약- 양관수 소설가
2022년 11월 04일(금) 00:30
석촌리(고흥군 과역면)에는 내가 가꾸는 밭이 있다. 두 필지인데 텃밭이라기엔 좀 넓고 농장이라 하기엔 작다. 주말농장으로 쓰려 마련했다. 그 탓에 나는 매주 일요일을 기점으로 하루나 이틀을 석촌리에서 보낸다. 이제 석촌리는 나의 일상이다. 마을에는 경기권에서 사업하다 귀농한 사장님도 두 분이나 산다. 토박이인 김 선생도 머문다. 김 선생은 범어(산스크리트어)와 타밀어로 이어지는 우리말을 연구한다. 또 액비(풀로 만든 액체 퇴비)와 생약에도 조예가 깊다.

석촌리에 들어선 나는 밭일을 뒤로 미루고 김 선생을 찾았다. 그가 집에 머물다 나를 반갑게 맞았다. 내가 그에게 하소연했다. 나는 한여름 설사에 시달렸다. 시작은 7월 15일 즈음이었다. 이비인후과 약을 먹은 뒤부터 몸에 이상 증상이 나타났다. 나는 여름이라 그런다며 찬 음식을 먹지 않는 등 식이요법에 신경을 썼다. 한 달쯤 시간이 흘러도 차도가 없었다. 나는 내과로 달려가 지사제를 처방받아 먹었다. 그 와중에도 이비인후과 약을 끊지 않았다. 지사제는 먹을 땐 듣는 척하더니 나중에 아예 효과가 없었다. 나중엔 종합병원에서 지사제를 처방받았다. 먹을 때뿐 뚜렷한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러다 한 달쯤 더 지났을 때 비로소 나는 이비인후과 약이 맘에 걸렸다. 인터넷에서 그 약들을 찾아 검색해보니 네 알 중 두 알이나 설사를 유발할 수 있었다. 체질에 따라 설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과민대장증후군에 자주 시달리는 체질이다. 그만큼 설사에 민감했다. 나는 바로 이비인후과 약을 끊었다. 그래도 설사는 약간의 차도가 있을 뿐 멈추지 않았다. 다시 지사제를 먹어도 듣지 않았다. 두 달 동안 설사를 하고 나니 몸이 지치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서울 큰 종합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말이 들렸다.

나는 병원 약을 더는 먹고 싶지 않았다. 다른 방법을 찾고 싶었다. 내가 더 살아갈 인연이라면 설사 잡아 줄 약이 나타날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들었다. 그때 떠오르는 사람이 석촌리 김 선생이다. 그가 내 말을 듣더니 바로 ‘이질풀’을 추천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앞서서 근처 산기슭으로 나섰다. 풀숲을 헤치며 이질풀을 뜯기 시작했다. 난 아무리 봐도 다른 풀이랑 구별이 안 되는 약초였다. 그가 호미와 삽을 들고 제 일인 것처럼 언덕을 누비며 뿌리까지 캐거나 풀을 뜯었다. 채취한 약초를 그러모으니 20리터 비닐봉지에 가득 찼다. 나는 집으로 약초를 가져와 씻고 말린 뒤 잘게 잘라 습기 차지 않도록 밀폐 용기에 담았다.

나는 2리터 정도 물이 끓자 3분의 1컵 남짓 말린 약초를 스테인리스 차망에 담아 우려냈다. 알맞게 식혀서 미지근할 때 한 컵 마셨다. 속이 편했다. 병원 약들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이었다. 설사가 멈추진 않지만 병원 약을 먹을 때 와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아랫배에 안정감이 드는 듯했다. 2리터 우린 물은 하루 정도 먹기에 적절한 양이었다. 말린 약초를 차망에 넣어 초벌, 재벌을 했다. 물맛도 좋았다. 어떤 차에 뒤지지 않는 맛매를 풍겼다. 약초 우린 물을 마신 지 5일째 되자 설사가 잡혀가는 걸 느꼈다. 15일 즈음 되자 정상으로 되돌아온 듯했다. 나는 두 달 반 날수를 설사에 시달리다가 이질풀을 우려 마시고 나은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불안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장자에 무용지용(無用之用)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자주 과민대장증후군에 시달린다. 그런데 이번 여름 설사병을 견디면서 이질풀이 좋다는 걸 알았다. 쓸모없음의 쓸모 있음이다. 앞으로는 이질풀을 떨치지 않고 우려 마시련다. 이제는 병원 약이 두렵다. 가능한 안 먹고 싶다. 약이 삶을 해치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다니. 이질풀을 추천한 석촌리 김 선생에게 맛있는 음식이라도 대접하려는데 그는 채식주의를 실행 중이다. 삶은 모순으로 둘러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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