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연장근로제 연말 일몰…속타는 광주·전남 중소기업
2022년 10월 26일(수) 19:00
고금리·고환율·고물가 ‘3고’에 인력난·경영난 불 보듯
“벌금 감수 불법 저질러” 하소연도 “일몰 폐지 항구화를”

/클립아트코리아

“8시간 추가연장근로제로 겨우 버티고 있는데 내년부터 정말 대책이 없네요.”

전남에서 수도관 관련 제품을 생산하는 제조기업 대표 이모(42)씨는 건설업계의 불황으로 매출이 감소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여기에 고금리와 고환율, 고물가까지 겹쳐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올해 말 추가연장근로제가 폐지될 경우 당장 내년부터 유례없는 인력난과 경영난에 시달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재 이씨의 회사에서는 12명의 근로자가 8시간 추가연장근로제를 통해 24시간 공장을 가동 중이다. 하지만 내년 추가연장 근로가 불가능해지면, 새벽 2시부터 오전 9시까지는 공장 문을 닫고 가동을 멈춰야 한다.

이씨는 “원청에서 요구하는 물량이 많을 때는 납품기일을 맞추기 위해 추가연장 근로가 불가피하다”며 “가뜩이나 경영이 어려운 상황에서 신규 인력 채용에 따른 부담이 클 뿐더러, 사람을 뽑고 싶어도 중소제조기업에 취업하려는 구직자도 없다”고 토로했다.

현재 30인 미만 기업에 한해 허용되는 8시간 추가연장근로제 일몰이 올해 말 도래하면서 지역 중소기업계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는 데다, 극심한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는 영세 중소기업들은 “생존이 달린 문제”라며 절박하게 호소하고 있다.

26일 광주·전남 중소기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주 52시간제가 전면 시행됐다. 30인 미만 사업장은 8시간 추가연장근로제를 통해 노사가 합의하면 주 60시간까지 근로할 수 있었지만, 해당 제도가 올해 말 일몰이 도래한다.

당장 내년부터는 생산물량을 맞추기 위해선 신규 인력 채용하는 것밖에는 해결 방안이 없다.

하지만 30인 미만 중소기업 대다수가 영세 사업장으로, 신규 인력 채용에 따른 비용부담이 크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더구나 중소기업, 특히 제조업계의 경우 취업을 하려는 구직자들이 없어 외국인 근로자 의존도가 높은 등 심각한 구인난을 겪고 있다.

광주전남중소벤처기업청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광주의 19명 미만의 소규모 제조기업체는 1만902개사, 전남은 1만6121개사에 달한다. 이들 기업 상당수가 추가연장근로제를 활용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에서 해당 제도의 일몰로 인한 지역경제가 타격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무엇보다 원청으로부터 하청을 받아 주문받은 물량을 제 시간에 납품해야 하는 3차, 4차 소규모 하청업체들은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광주의 한 가전 부품업체 대표는 “제도가 폐지되면 납품 기한을 준수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게 된다”며 “연장수당도 줄어들게 돼 회사를 다니던 기존 직원들도 퇴사해 현장을 떠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제조업계의 문제만이 아니다. ‘인공지능 중심도시’를 추진 중인 광주지역 IT업계도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프로그래밍과 연구개발(R&D) 업무 특성상 하루 8시간 근로시간을 지키기 힘들기 때문이다. 한가지 프로젝트나 업무에 오랜 시간을 들이게 될 수 있고, 밤을 새워 작업하는 경우도 많아 사실상 주52시간제를 지키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광주지역 IT업계는 ‘프로그래머, 개발자 부족 사태’가 심각한 수준이다. AI 관련 산업이 확장하면서 개발자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광주에 있던 기존 개발인력이 수도권으로 이탈하고 있는 데다, 숙련된 개발자를 채용할 수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신규 직원을 뽑아 일을 가르쳐도 경력을 쌓아 이직해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광주의 한 IT기업 대표는 “하청을 받는 입장에서는 프로젝트의 규모를 조정하거나 설정할 수 없다”며 “하청을 받은 프로젝트를 짧은 기간 내 처리해야 할 때 밤을 새우는 등 추가 근로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어 “개발자 신규 채용도 어렵지만 개발 업무 특성상 한 가지 프로젝트에 여러 개발자가 붙는다고 일을 빨리 끝낼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IT기업은 유연하게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한데 법으로 막아 놓으면 먹고 살기 위해 벌금을 내더라도 일을 시킬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창호 중소기업중앙회 광주전남지역본부장은 “중기중앙회 조사를 보면 주 52시간을 초과하는 30인 미만 제조업의 91.0%가 추가연장근로제에 의존하고 있고, 75.5%는 일몰이 도래하면 대책이 없는 절박한 상황”이라며 “해당 제도가 사라지면 고금리, 고환율, 고물가, 인력난 등으로 존폐 위기에 직면한 영세기업이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중소기업계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일몰을 폐지하고 제도를 항구화해주길 정부와 정치계에 절실하게 요청한다”고 말했다.

/박기웅 기자 pboxer@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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