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신방직 공장터 사용 설명서-박홍근 건축사·포유건축 대표
2022년 10월 05일(수) 00:45
광주 임동의 전남·일산 방직 공장은 암울한 일제 저항기인 1935년부터 90년 가까이 한 곳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켜 왔다. 변두리였던 공장은 인구가 늘어나고 도시가 커지면서 도시 한복판이 되었다. 세월은 공장을 노후화시켰고 주변 상황이 변하면서 제 기능은 다 했다. 2017년이다. 이제 공장터는 매각되어 변신을 기다리고 있다.

변신의 첫 단추는 터의 용도를 바꾸는 것이다. 광주광역시의 몫이고 그가 ‘갑’이다. 땅 주인 ‘을’은 ‘갑’에 사용 계획을 제시하고 협상해야 한다. ‘갑’은 협상 사전 준비를 하고 있다. 태스크포스를 구성하여 논의하고 터에 대한 사전 조사도 했다. 용도변경을 위한 사전 협상 전제 조건도 제시하고 ‘을’의 개발 제안을 기다리고 있다. ‘갑’과‘을’은 상생해야 한다. 현재의 시민에게, 후손에게도 선물이 되어야 한다. 지금이 기회의 시간이다.

그간 많은 빛과 그림자를 간직한 공장은 많은 기억과 기록을 남기고 다른 기능으로 변화를 기다리고 있다.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물은 건축 과정까지는 사유재산이지만, 완공 후엔 우리 모두의 공공재가 된다. 전남·일산 방직 공장 터가 그렇다. 터에 대한 사용 설명서를 생각해 본다.

첫째, 광주 도시 공간구조의 변화를 총체적으로 점검하자. 이곳 부지만 고민하지 말자. 도시계획과 경관에 어떤 역할과 변화를 초래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 미래 도시 전략도 함께 다루어야 한다. 현재와 미래 광주 이미지의 전환점이 될 중요한 위치다. 도시·경관·교통·건축 계획을 통합적으로 점검하자.

둘째, 공장 터 절반을 공공재로 확보하자. 터 면적은 30만 4130㎡(9만 2000평)이다. 용도변경에 따른 땅값 상승을 고려할 때는 터의 절반을 공공재로 확보해도 무리가 아니다. 매매 가격은 3.3㎡(평)당 750만 원에 거래되었다. 상업 용도로 바뀌면 땅값은 최소 서너 배 이상 상승할 것이다. 가치와 가격을 시민과 공유해야 한다.

셋째, 고밀·초고층의 콤팩트 단지로 개발하자. 도시의 얼굴에 변화를 꾀하자. 무등산에 오르지 않더라도 광주 경관을 향유할 수 있는 공간도 만들자. 다양한 환경을 체험하고, 거주할 수도 있도록 주거·문화·숙박·쇼핑 시설 등을 복합화하고 테마파크 같은 장소로 조성하자. 도시 환경과 스카이라인에 대변혁을 줄 기회다.

넷째, 공간 복지의 롤 모델이 되게 하자. 공짜로, 누구나 이용이 가능한 공간을 많이 만들자. 공원, 작은 숲길, 걷기 편한 길, 벤치, 문화 공간, 휴식 공간 등을 갖춰 시민이 부담 없이 이용하게 만들자. 소유자는 기업이지만 누리고 즐기는 사람은 모든 시민이 되게 하자.

다섯째, 스타 마케팅으로 공간을 브랜드화하자. 세계적 명성이 있는 건축가를 설계에 참여케 하자. 명소가 될 공간과 장소는 좀 다르게 접근하자. 광주에 이런 곳 몇 개는 있어야 한다. 공간의 질을 상향평준화할 디자인과 디테일을 일상에서 경험하게 하자.

여섯째, 행정과 정치권은 지원하되 간섭은 최소로 하자. 기업인은 훨씬 예민하다. 생사가 달려 있다. 그들의 창의성 발휘를 최대한 보장해 주자. 정치권의 ‘아니면 말고’ 식이나, 행정의 감사에 대한 불안으로 발목이 잡히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자. 행정 최고책임자의 지속적 관심과 지원이 없으면 어렵다는 것도 명심하자.

마지막은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실천의 최고 기업이 되게 하자.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윤리적 가치를 갖고, 지역사회와 지속적인 성장을 보여 줄 수 있는 기업이 참여해야 한다. 지역사회에 선순환이 될 현지 법인이면 더 좋다.

전남·일산 방직의 독특한 공장 구조를 일상의 향유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색다른 경험과 창의적 도시 생활, 지역 경쟁력의 촉매제 역할도 해야 한다. 입장에 따라 사용 계획이 다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고을 광주’는 영원해야 해야 하기에, 이 공장 터는 도시 대변혁의 역할과 더불어 광주에만 있는, 광주에 와야만 누릴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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