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민심 - 임동욱 선임기자·이사
2022년 09월 13일(화) 00:15 가가
추석의 백미는 가족과 친지가 한자리에 모여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는 것이다. 서로의 근황과 안부를 확인하고 마주한 현실을 토로하며 내일을 위한 힘을 얻는 삶의 연대가 형성되는 자리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살아가는 얘기를 통해 추석 명절 기간 형성되는 여론은 정국의 변곡점이 되기도 한다. 부모, 형제, 친지 간에 바라보는 세상은 조금씩 다르지만 지역, 세대, 성별 등에 따른 소통은 담론이 되고 거대한 민심으로 표출되기 때문이다.
이번 추석은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이후 처음 맞는 명절이다. 3년 만에 민족 대이동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정치권은 민심의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올해 추석은 여느 때보다 정치적 이슈가 많았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평가와 검찰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기소, 김건희 여사 주가 조작 의혹 특검,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회 출범과 이준석 전 대표의 법원 가처분 신청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이에 여야는 추석 민심을 발판으로 정국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태세다.
하지만 추석 민심의 밥상에는 윤석열 대통령도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김건희 여사도, 여야의 법적 공방도 오르지 못했다는 평이다. 최악의 민생 위기에 해법 마련을 위한 협치 보다는 역대급 정쟁 조짐을 보이는 정치권에 민심이 아예 고개를 돌렸다는 것이다. 민심이 정치권에 대한 분노를 넘어 아예 체념과 함께 무관심 수준에 이르렀다는 말도 나온다. 정치권 이슈가 추석 밥상에서 대화 분위기를 흐린다는 점에서 사실상 금기시된 셈이다.
프랑스의 화가이자 시인인 마리 로랑생은 ‘진통제’(Le Calmant)라는 시에서 ‘버려진 여자, 죽은 여자보다 더 비참한 것은 잊혀진 여자’라고 실연의 아픔을 노래했다. 정치와 연애의 공통점은 사랑받지 못하면 존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민생에 복무하지 못하는 정치는 결국 민심의 외면과 심판을 통해 버려지고, 잊혀진다는 점을 정치권은 되새겨야 할 것이다.
/tu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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