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원탁-정유진 코리아컨설트 대표
2022년 08월 22일(월) 01:00
20여 년 전 만하더라도 내 주변에서 채식주의자를 만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다만 국제 행사 관련 일에 종사하면서 초청 인사로 한국을 방문한 채식주의자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채식이 각기 다른 배경과 가치관에서 비롯되고 섭취 식품군도 다양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미 오래 전 일이지만 독일에서 온 한 채식주의자는 그야말로 한바탕 고생을 하고 갔다. 한식이 맛있는데다 채식 위주라는 큰 기대감으로 온 그는 우리나라 전국을 여행하며 결국 어느 음식 하나 마음 편하게 먹을 수 없었다고 하소연을 했다. 그를 통해 젓갈류가 들어간 김치와 멸치 육수로 맛을 낸 구수한 두부 된장찌개가 그와 같은 완전한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음식이 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는 채식을 하는 사람들을 대개 ‘비건’(Vegan)으로 통칭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비건의 정의를 들여다 보면 비건이란 식물성 음식 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먹지 않는 철저하고 완전한 채식주의자를 의미한다. 어떤 음식류를 먹는지에 따라 땅에 떨어진 열매만 먹는 아주 극단적인 ‘프루테리언’(Fruitarian)에서 모든 육류와 유제품을 먹지 않으면서 동물의 알 등은 먹는 ‘오보’(Ovo), 여기에 채소는 기본으로 육류만 빼고 유제품, 동물의 알, 해산물까지 다 먹는 ‘페스코’(Pesco), 동물의 알은 먹지 않고 유제품과 꿀 등 동물을 통해 만들어지는 음식을 먹는 ‘락토’(Lacto)가 있다. 또한 채식을 주로 하되 본인의 선택에 따라 가끔 육식을 하기도 하는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 등 그야말로 다양하고 유연한 채식주의자가 존재한다.

이런 국내 채식 인구는 2008년 15만 명에서 10년이 지나자 150만 명이 되었고 작년에는 약 250만 명으로 지난 4년간 더욱 급속하게 늘었다. 채식을 선호하는 인구까지 더한다면 이보다 훨씬 많다. 폭풍 성장을 하고 있는 채식 문화의 확산은 이제 우리 주변에서 전 보다 눈에 자주 띄는 비건 식품과 제품군 그리고 늘어나는 전문 식당을 보며 체감할 수 있다. 아울러 학교 급식과 관련해 ‘채식 급식’을 시범적으로 운영하는 학교들과 ‘채식 선택제’ 도입을 예고하고 있는 지역도 늘어 가는 추세이다. 채식주의자는 음식을 가려먹는 소수자로 극단적이며 예민하고 별스러운 사람들이란 인식에서 벗어나 건강, 동물권 보호, 환경 등의 가치를 우선한 사람들이란 인식이 커졌다. 그야말로 비건 문화는 현 시대상과 사회상을 반영하는 문화 현상이자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식인과 비채식인이 한 자리에서 편안하게 식사하기란 현실에선 아직 쉽지만은 않은 듯 하다. 실제로 최근 발표된 채식주의에 관한 연구(‘음식문화 소수자로서 채식주의자의 식사 경험에 대한 통합적 문헌 고찰: 질적 연구를 중심으로’ 연세대 간호학과 김상희 교수팀) 내용에 따르면 채식인이 채식을 하면서 어려운 점으로는 비채식인과의 관계인 것으로 꼽았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비채식인인 내가 경험했던 이야기는 이제 모두가 겪을 수 있는 일이 되었다. 비채식인이 채식인과 함께 식사를 하면 까다로운 채식인 때문에 비채식인이 불편한 것이 아니라 실은 한 식탁에서 유별난 사람으로 취급을 당하기도 하고 함께 가는 식당에 채식인을 위한 메뉴가 없으며 채식 주문을 부탁하면 거절을 당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이렇듯 국내 대다수의 식당에서는 채식에 대한 이해나 존중을 반영한 메뉴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더 이상 비건은 어떤 것에도 타협하지 않는 까다로운 소수자가 아니고, 넌비건(non-Vegan)이 무식하거나 동물권을 무시하고 환경에 무책임한 사람들도 아니다. 비건과 넌비건, 채식주의자와 비채식주의자가 서로를 존중하고 거리낌없이 한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 당연해지기 위해선 채식인과 비채식인이 함께 식사할 수 있는 곳이 늘어나야 할 것이다. 채식인과 비채식인이 공통으로 식사를 하는 곳이 많을수록 나와 타인을 구별하고 나와 다름으로 남을 차별하는 일이 드문 세상이지 않을까? 단순히 일상에서의 먹는 문제라고 하지만 어느 곳에서나 모두를 위한 편안한 밥상을 갖는 것이란 그야말로 공존을 지향하고 모색하는 원탁의 사회를 갖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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