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정별’(栗亭別) 시비라도 세우자-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2022년 06월 27일(월) 01:00
‘신유옥사’(1801)로 다산 정약용은 경상도 장기현(지금의 포항시 바닷가)에서, 손암 정약전은 전라도 완도의 신지도에서 귀양살이하고 있었다. 그해 늦가을 ‘황사영 백서 사건’이 일어나 두 사람은 다시 서울로 압송되어 감옥에 갇히고 국청에서 국문을 받는 참담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아무리 고문을 가하고 혹독한 수사를 했지만 그들 형제는 황사영과는 전혀 연관이 없어, 그렇게도 다산을 죽이려 했지만 무죄로 풀려날 수밖에 없었다.

그해 11월 5일 감옥에서 풀려난 두 형제는 당일로 서울을 출발하여 새로 정해진 유배지로 함께 가야만 했다. 다산은 강진으로, 손암은 흑산도로 가기 위해 두 형제는 나란히 천릿길을 걸어서 함께 도착한 곳이 나주읍 북쪽 5리 지점인 율정(栗亭)이라는 주막거리였는데, 그곳 사람들은 ‘밤남정’(밤나무 정자 거리)이라고 불렀다. 11월 21일 저녁 무렵이었다. 밤남정 마을은 서울로 가는 길목으로 목포 쪽에서 올라오는 길과 강진 쪽에서 올라오는 길이 합해지는 삼거리로 큰 주막거리로 크게 번성하던 마을이었다는데, 지금은 길도 바뀌고 마을도 폐허에 가까울 정도로 빈 집만 몇 채 있을 뿐이다. 현재는 나주시 대호동으로 동신대학교에서 북쪽으로 700~800미터 지점에 있다.

다산 형제가 그곳 주막집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영원한 이별을 했다는 흔적은 어디에도 없는 쓸쓸한 곳일 뿐이다. 그러나 다산의 기록에 ‘형제가 서로 이별했던 곳’(兄弟相別處)이라는 명확한 기록이 있고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형님을 이별하는 슬픈 노래를 읊은 ‘율정별(栗亭別)’이라는 눈물겨운 시가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초가 주막 새벽 등불 푸르스름 꺼지려는데/ 일어나 샛별 보니 이별할 일 참담해라/ 두 눈만 말똥말똥 둘이 다 할 말 잃어/ 애써 목청 다듬으나 오열이 터지네./ … / 또 바보스런 아이가/ 망령되이 무지개 붙잡으려 하는 셈이니/ 서쪽 언덕 바로 앞에/ 아침 무지개 분명히 보이나/ 아이가 쫓아가면 무지개는 더욱 멀어져/ 또 저 서쪽 언덕 쫓아가도 다시 서쪽이라오.” 쫓아갈수록 멀어만 가는 무지개를 등장시켜 헤어지면 다시 만나기 어려운 형제의 슬픈 이별을 그렇게 멋지게 읊은 시가 얼마나 있을까. 다산의 탁월한 시문학의 천재성이 거기에서도 번쩍인다.

22일 아침 헤어질 때야 영원히 못 만나리라는 생각은 못했겠지만, 흑산도로 들어간 정약전은 16년째에 병이 들어 세상을 떠났고, 다산은 18년째에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율정을 지나자 형님 생각에 가슴이 막혀 한없이 통곡했던 곳이 바로 율정의 주막거리였다. 겨우 편지를 통해 일 년에 한두 차례 소식을 주고받던 형제는 끝내 만날 수가 없었기에, 다산의 글에는 가끔 율정이 등장했다. ‘둘째 형님의 편지를 받고’라는 시에는 “살아서는 미워할 밤남정 주막/ 문 앞에는 두 갈래로 길이 갈렸네…”라고 읊었고,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밤남정에서의 이별이 마침내 영원한 이별이 되고 말았구나!”라고 표현하여 형님 생각만 나면 헤어졌던 밤남정을 기억해내고 있었음을 알아볼 수 있다. 형님의 타계 소식을 듣고 집으로 보낸 편지를 읽어보면 형님과의 관계가 어떠했는가도 알아보기 어렵지 않다.

“외롭기 짝이 없는 이 세상에서 다만 손암 선생만이 나의 지기(知己)였는데, 이제는 그분마저 잃고 말았구나. 지금부터는 학문 연구에서 비록 얻을 것이 있다 하더라도 누구와 상의를 해 보겠느냐? …”라고 말하여 학문을 토론한 형을 잃은 아우의 한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런 형제가 생시에 마지막으로 헤어졌던 밤남정 주막거리, 그곳에 두 형제가 살아서는 마지막 함께 잠을 자고 영원한 이별을 했던 곳에 대한 흔적이 하나도 없어서야 될 일인가. ‘율정별’이라는 간절하고 애절한 시를 새긴 조형물이라도 하나 만들어, 희대의 천재학자 두 형제의 슬픈 사연을 기억하게 해 주어야 하지 않을 것인가.

볼품 있는 조형물이 세워지고, 그곳에 초옥의 주막집이라도 하나 지어지면, 강진의 다산초당을 찾는 관광객들은 반드시 그곳을 들르게 되어, 분명히 관광 명소가 되리라는 것은 당연하리라 믿는다. 나는 오래 전부터 나주시 당국에 여러 차례 권유한 바가 있었건만, 세월은 흘러도 실행되지 않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정말로 시 당국이 실행하지 않는다면 나주 출신 독지가들이라도 나서서 그런 일을 한다면 선현을 기리는 훌륭한 덕행이 되지 않겠는가. 나주시의 집행부도 새롭게 바뀌는 때를 맞아 그 일이 성사되기를 간절히 바라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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