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을 적시는 따스한 ‘오월의 선물’ 푸른연극마을의 ‘고백’을 보고-박관서 시인·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2022년 06월 23일(목) 00:30 가가
박관서 시인·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서울에서 만난 5·18은 무척 신선했다. 시절이 하 수상함을 넘어서서 한참 뒤로 돌아가는 듯한 어두운 그림자 때문에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대학로의 후암시어터에서 만난, 5·18광주민중항쟁을 기림과 동시에 일깨우는 푸른연극마을의 연극 ‘고백’은 충분히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읽혔다. 필자는 한참 연습 기간이었던 4월 어느 날, 시어터연바람을 방문했을 때 고백 연습이 한참이었다. 애써서 푸른연극마을이 오일팔 주간에 대학로에서 연극을 하겠다고 다짐을 한 계기 또한 국가기념일로 제정되었음과 아울러 원흉인 독재자가 죽었다는 데 있다 했다. 밝혀야 할 진상은 물론 그 의미와 가치가 제도화되면서 인간의 기억에서 국가의 행사와 역사의 기록으로 넘어간다. 사람들은 애써 가슴을 울리지 않고, 달력에 기재된 붉은 글씨로 그날에 그 의미를 되새기고 넘어갈 뿐이다. 그렇듯이 5·18은 지금 기로에 서 있다.
그 기로의 선상을 거친 몸짓과 험한 숨결로 연극의 서막을 열어젖힌 배우의 인상이 뜻밖에 낯익어서 반가웠다. 하지만 그 반가움은 사실 연극의 주인공들이 알코올 중독에 빠진 늙은 사내 만호와 정신병 걸린 그의 딸과 버스 안내양 민정, 구두닦이 영수, 중국식당 철가방 봉식 등 흔히 말하는 최하층 민중들의 모습과 정서가 벅차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지금은 누구의 마음이나 행동에서도 사라진 밑바닥 민중들의 생동감 있는 삶의 환희와 열정이 그대로 아름답게 느껴져 전해 왔다. 모두가 부자가 되고 부자가 될 수 있으나, 아무도 부자가 되지 못하고 지옥과 같은 불행감이 일상화된 오늘의 우리 사회에서 모처럼 만나는 건강함이었다. 과연 그러하였다.
5·18광주민중항쟁에 저처럼 풀뿌리 민중들의 기운 생동이 원동력으로 작동하지 않았다면, 이 지독한 분단 상황과 강대국들이 조장한 좌우 이데올로기 등의 벽을 제대로 뛰어넘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점에서 우리는 지금 5·18을 어떻게 매만져서 어떻게 전해 주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숭고한 이념이나 건전한 국가기념일의 그것만이 아니라, 기회만 되면 뚫고 나와서 민주공화국의 시민들을 괴롭히거나 파괴하는 우리 안의 파시즘에 맞서는 항체로서의 일상의 5·18을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고백해야 한다. 독재자와 그 독재에 부역한 이들의 고백만이 아니라, 그 독재자들을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자꾸 선택하는 우리들의 욕망과 손길을 고백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수많은 당시의 가해자들의 입을 여는 첩경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5·18을 단순히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공간에서 일어난 아픈 역사적인 사실 관계를 넘어서서 인간으로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의미와 가치로 승화시켜내는 일일 것이다. 물론 그러한 일상의 5·18은 연극과 문학, 미술 등을 비롯한 문화예술의 몫이다.
“오월의 충장로 차도를 넘어 뻗치는 팔로 부풀어 오른 오월꽃에 취해 분홍 드레스 애인과 함께 걷던 나팔바지 청년이었어 나는! 곤봉으로 내려쳐서 붉은 피 질질 흐르는 나의 이마에 매달려 손수건으로 닦아 내는 애인과 함께 연행해 가던 계엄군이었어, 너는! (졸시집 ‘광주의 푸가’ 인용 대사) 아빠, 뭔가 느낌이 확 살아나는 것 같지 않아?” 사는 내내 감추어야 했던 사실, 계엄군으로 광주 현장에 참여했던 제 아비의 고백을 끌어낸 젊은 연극 학도의 시선을 주제 구현의 주요 동선으로 삼은 연극 ‘고백’은, 아직도 푸른 눈의 외국인 시각을 편히 받아들이는 우리들의 고백을 아프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미안함으로 이어졌다.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새날이 거짓말처럼 왔다 가도 흔들리지 않아야 하는 요즈음, 모처럼 볼을 적시는 따스한 눈물과 함께 오월의 선물을 받았다.
그러한 점에서 우리는 지금 5·18을 어떻게 매만져서 어떻게 전해 주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숭고한 이념이나 건전한 국가기념일의 그것만이 아니라, 기회만 되면 뚫고 나와서 민주공화국의 시민들을 괴롭히거나 파괴하는 우리 안의 파시즘에 맞서는 항체로서의 일상의 5·18을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고백해야 한다. 독재자와 그 독재에 부역한 이들의 고백만이 아니라, 그 독재자들을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자꾸 선택하는 우리들의 욕망과 손길을 고백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수많은 당시의 가해자들의 입을 여는 첩경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5·18을 단순히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공간에서 일어난 아픈 역사적인 사실 관계를 넘어서서 인간으로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의미와 가치로 승화시켜내는 일일 것이다. 물론 그러한 일상의 5·18은 연극과 문학, 미술 등을 비롯한 문화예술의 몫이다.
“오월의 충장로 차도를 넘어 뻗치는 팔로 부풀어 오른 오월꽃에 취해 분홍 드레스 애인과 함께 걷던 나팔바지 청년이었어 나는! 곤봉으로 내려쳐서 붉은 피 질질 흐르는 나의 이마에 매달려 손수건으로 닦아 내는 애인과 함께 연행해 가던 계엄군이었어, 너는! (졸시집 ‘광주의 푸가’ 인용 대사) 아빠, 뭔가 느낌이 확 살아나는 것 같지 않아?” 사는 내내 감추어야 했던 사실, 계엄군으로 광주 현장에 참여했던 제 아비의 고백을 끌어낸 젊은 연극 학도의 시선을 주제 구현의 주요 동선으로 삼은 연극 ‘고백’은, 아직도 푸른 눈의 외국인 시각을 편히 받아들이는 우리들의 고백을 아프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미안함으로 이어졌다.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새날이 거짓말처럼 왔다 가도 흔들리지 않아야 하는 요즈음, 모처럼 볼을 적시는 따스한 눈물과 함께 오월의 선물을 받았다.